<홍순도 장편소설> 이 미친 넘의 사랑…(1)

2007-01-15     홍순도
    여느 해나 그렇지만 우기(雨期)가 끝나는 7월부터 10월까지의 타이완(臺灣)은 태양이 작열한다는 표현이 무색할만큼 무덥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인 섹스조차도 귀찮아질 정도로. 이 시기에는 제 아무리 천하의 절색이 바로 코 앞에 완전 무방비 상태의 나신으로 누워 있다 하더라도 쉽게 구미가 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념을 타이완 한량들이 종종 우스갯소리로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1989년 그 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신하이루(辛亥路)의 국제청년활동센터와 양밍산(陽明山), 그리고 시먼딩(西門町)등을 중심으로 한 수도 타이베이(臺北)는 그해 7월 초부터 4개월동안 유난히도 뜨거웠다고 그곳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마치 그곳을 중심으로 일어난 숨막히는 일련의 사건들과 수많은 남녀들의 정사들처럼 그렇게…

    이른 새벽이었다. 황병덕(黃秉德)기자는 30대 전후의 건강한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없어서는 안되는 하복부의 터질듯한 다소 거추장스러운 팽창감에 못 이겨 눈을 떴다. 하복부의 귀찮은 존재는 여전히 화를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여자만 생리를 하는 것이 아니네, 이거. 누가 여자들이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더 불편하다고 했어. 남자들은 노인이 될때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래야 하니, 휴…"

     황 기자가 조용히 투덜거렸다. 갑자기 용두질로 하복부의 불편함을 해소하고픈 욕망이 급속도로 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어제 저녁에 마신 술이 목 저 끝까지 쩍쩍 달라붙게 만드는 갈증을 불러오는데다 몸 상태 역시 여의치 않은 탓이었다.

    그는 술기운에 잠기려는 눈을 다시 번쩍 떴다. 침대 바로 옆 간이 식탁에 놓인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누운채 팔을 뻗어 주전자를 잡고 입으로 물을 쏟아부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시원함이 머릿속까지 젖어들게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황 기자가 다시 짧게 중얼거리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숙소인 국제청년활동센터와는 비교도 안되는 호화스러운 낯선 방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책상 하나에 침대 하나가 고작인 자신의 방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머리 바로 위의 고풍스런 샹들리에나 미묘한 방향(芳香)이 풍기는 드넓은 방은 그가 서울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모습이었다. 더구나 그의 옆에서는 젊은 여자가 홑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결코 간단치 않은 그의 건장한 몸은 완전 나체였다. 그는 얼른 옆에 놓인 바지 등속을 대강 추슬러 입고 여자를 흔들어 깨웠다.

    "이거 봐요? 당신 도대체 누구요?"

    황기자의 목소리는 대범한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그러지려던 그의 하복부는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되 다시 급속도로 팽창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무쇠라도 녹일 능력을 가진 3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가 분명했다.

    "으음……피곤하실텐데 좀 더 주무시도록 하세요.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하고……"

    잠이 덜 깨서 그런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이기는 했어도 여자는 아주 정확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목소리만으로도 대단히 섹시한 미모의 여자일 것이라는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황 기자로서는 도대체 모를 일이었다. 그는 중국어에 능통하기는 했으나 타이베이에 온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아는 여자라고 해봐야 숙소 사무실 직원의 권유만 듣고 어제 무작정 가본 예류(野柳)라는 유원지에서 우연히 만난 조수연(曹秀姸) 여사 외에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와 동침할만한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그는 이번에는 여자를 더욱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그 와중에도 그는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그녀의 풍만한 몸의 감촉을 통해서 젊은 여자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자극적이고도 야릇한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하복부 부근이 더욱 뻐근해지고 있었다.

    "아니 자초지종이나 좀 압시다. 도대체 왜 생면부지인 당신이 나와 같이 자고 있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