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피멍드는 선분양제③] '적폐' 손가락질에도 40년간 요지부동
부동산투기와 각종 소비자 민원의 원인으로 꼽히는 아파트 선분양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건설사가 보여준 모델하우스나, 분양광고대로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아 소비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선분양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선분양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자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관련 제도 개선과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민간 분양 시장에 후분양제를 도입해 소비자가 실물 아파트를 보고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해 말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후분양제를 즉각 도입하라”고 주장한데 이어 올 9월에도 “시장 정상화를 위해 모든 주택의 후분양제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며 집회를 열었다.
경실련 관계자는 “철저한 공급자 위주의 주택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보니 모델하우스나 홍보물 등 제한된 정보만으로 수억 원대의 주택 구입을 결정해야 한다”며 “공공부문은 후분양제를 시행하는 한편 민간부문 역시 적극적인 도입계획을 밝히고 관련 법안 개정을 위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선분양제 폐지 후 대안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진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은 “지난 수십년간 국민들이 후분양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이유는 내가 살 집의 샷시는 잘 설치돼 있는지, 타일은 균일하게 붙어 있는지, 비 오는 날 주차장에 물이 새진 않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며 “공정률 80% 단계에서 후분양제를 실시해 주택 시장의 적폐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 건설사와 소비자 '경제적 이익' 이해타산 속 선분양제 시장 고착
그럼에도 1970년대 말 도입된 선분양제가 40년 넘게 개선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건설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며 분양 시장 볼륨을 키우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 온 때문이다.
수천가구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수천 억~수조 원 수준의 막대한 비용이 든다. 중·소규모 건설사는 물론 대형건설사도 일시에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 지금껏 건설사들이 공격적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던 건 부지매입을 끝낸 후 선분양제를 통해 건설 자금을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전국 28만4206가구의 준공물량이 쏟아졌다. 아파트 한 채당 100세대로 간주할 경우 3000개 가까운 아파트 건물이 10달 동안 건설된 셈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등 대형 건축공사에 투입되는 자금 조달 규모는 대형건설사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며 “선분양 방식을 유지하며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시장 친화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에게도 선분양제는 대표적인 투자 호재 거리중 하나다.
선분양제 도입 당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연 10% 수준이었다. 아파트 분양권은 으레 주변 시세보다 싸게 공급됐고 미리 사두고 2~3년만 기다리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분양권에 수천만~수억 원의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가 반복됐다.
현재 경제성장률은 2~3%대로 떨어졌고 지방에는 미분양 물량이 넘쳐나지만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자고 일어나면 집 값이 뛰는 부동산 투기가 지속되고 있다.
건설사와 일부 소비자들은 ‘선분양제’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겨왔고 이런 시장 구조 탓에 과도한 주택값 상승, 주택담보대출 급증, 전·월세가격 상승, 하우스푸어 등 각종 심각한 사회경제적 적폐를 양산해 온 셈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