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소비자, 뒷짐진 본사⑦-수입차] 1억3천만 원짜리 BMW 도어 교체 흔적...제조사-딜러 책임 핑퐁
본사 과실 입증돼도 과태료 100만원 '솜방망이'
2021-05-18 박인철 기자
온라인쇼핑이나 배달앱, SNS 등 온라인 중개 서비스(플랫폼)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상품 공급자 외에 플랫폼 제공 기업에도 책임을 묻는 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플랫폼 운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러나 온라인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리점과 프랜차이즈 가맹제도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믿고 거래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경우 본사는 가맹점 뒤에 숨어 뒷짐을 지고 있기 일쑤다. 법적으로 본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도 전혀 없어 소비자 피해 구제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은 2021년 ‘뿔난 소비자, 뒷짐진 본사' 기획 시리즈를 통해 가맹제도에 따른 소비자 피해 연대 책임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 경기도 이천에 사는 홍 모(남)씨는 올해 BMW 대형SUV 'X7'을 1억30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인수받은 후 일주일이 안돼 조수석 뒷문의 수리 흔적을 발견하고 딜러사에 교환을 요청했으나 본사와 협의결과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딜러사도 도어 교체 흔적은 인정했지만 운송 과정 중에 발생한 이력이 없어 교환대상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홍 씨는 “BMW 본사에선 출고된 차량은 딜러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어 해결해줄 수 없다는 태도다. 1억이 넘는 거액을 주고 중고차를 산 셈인데 군소리 말고 그냥 타라는 건지 기가 막힌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 안산에 사는 오 모(여)씨는 지난 12월 메르세데스-벤츠 GLC 하이브리드를 구입한 후 3주 만에 브레이크 이상을 겪었다. 시동이 다시 켜지지 않아 긴급 견인조치로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입고했는데 수리 비용만 2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오 씨는 3주 만에 발생한 중대결함인 만큼 딜러사에 차량을 교환 혹은 환불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벤츠 고객센터에도 접수했지만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 씨는 “온라인에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는 하이브리드 오너들이 많아 본사에도 이야기를 전했는데 묵묵부답”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대구시에 사는 이 모(남)씨는 지난해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던 중 아우디 딜러가 '전기차 충전크레딧카드 300만 원어치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e-트론'을 구매했다. 한 달여는 충전크레딧카드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이후부터 무슨 문제인지 결제가 되지 않았다. 판매딜러에게 문의하려고 해도 도통 연결되지 않았다. 본사 고객센터에 따지자 "딜러와 협의하라"며 등을 돌렸다. 이 씨는 "충전크레딧카드 제공이 메리트 있다고 판단해 구매했는데 전혀 사용할 수없다. 딜러는 연락도 피하고 고객센터는 나몰라라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 구리시에 사는 최 모(남)씨는 혼다 오토바이 구입 후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겼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스크레치와 단차를 발견했다. 작업 퀄리티에 대해 정비사에 항의했지만 괜한 트집을 잡는 사람처럼 최 씨를 몰아갔다. 최 씨는 “교환 수리 부분 외에 다른 외장 부분에도 작업 흔적과 얼룩, 안보이던 스크래치까지 보여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참고 부품비만 지급하겠다고 하자 업체에선 ‘탈거된 부품들을 직접 다 조립하고 가라’고 하더라”며 황당해 했다. 제대로 수리도 받지 못한 상황에 서비스센터의 태도에도 화가 나 본사 고객센터에 항의했지만 "서비스센터에 전달하겠다"고만 할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수입차도 '뒷짐진 본사'의 대표적 사례다. 편의점이나 치킨 등 프렌차이즈의 경우 분쟁 대상이 수천 원에서 많아야 수만 원하는 상품이 대부분이지만 수입차는 수천 만원에서 최대 수억 원의 고가 차량이 거래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피해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연간 판매량 30만 대를 바라보는 등 호황이지만 수입차의 경우 딜러사를 통한 위탁판매 구조 탓에 소비자 피해도 함께 늘고 있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는 차량을 구매한 후 딜러사나 서비스센터 등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 본사에 도움을 호소해도 ‘출고 후 발생하는 문제는 딜러사의 책임’이라며 선을 긋고 책임져 주지 않았다는 소비자 불많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피해는 수입차의 판매 구조에 기인한다.
대부분 수입차 브랜드는 본사에 한국 법인을 세운 뒤 복수의 딜러사를 통해 특정 지역 판매권을 부여하고 차량을 공급한다. 본사로선 딜러사들과의 계약으로 영업, AS 네트워크 확충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이들 간의 경쟁을 통해 판매 루트도 확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본사는 차량 출고 후 법적 책임에서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신차 출고 후 발생 문제는 최종 유통 단계인 딜러사들의 책임이라는 게 본사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한 수입차 본사 관계자는 “출고 후 벌어지는 문제는 딜러사가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본사도 민원의 경중을 판단해 필요할 경우 딜러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딜러사 업무에 본사가 일일이 개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차량 인도 시 이미 하자가 있는 경우(탁송과정 중 발생한 차량하자 포함) 보상 또는 무상수리, 차량교환, 구입가 환급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소비자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에도 허술한 부분이 있다. 신차 수리 이력을 고지하는 주체 등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어 분쟁 발생시 제조사나 딜러사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실제 자동차관리법 제8조의2를 보면 ‘제작사나 판매자는 자동차를 판매할 때 인도 이전에 발생한 고장 또는 흠집 등 하자에 대한 수리 여부와 상태 등을 구매자에게 고지해야 한다. 소비자는 공장 출고 후 인도 전까지 어떤 수리 과정을 거쳤는지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솜방망이 처벌 규정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
본사나 딜러가 이같은 법을 어겨도 과태료는 100만 원에 불과하다.
신차 교환이나 환불 등의 부담해 비해 과태료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보니 책임을 떠 안는 게 오히려 손해란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신차에 흠집이 생겨도 새 차로 둔갑돼 판매되는 경우가 있는데 통상 양측 합의에 의한 보상이 대부분”이라면서 “현재는 법 자체가 ‘걸리면 운이 없고 안 걸리면 좋고’ 하는 식이라 과태료를 현실적인 금액에 맞춰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입차 네트워크 구조를 잘 모르는 소비자의 경우 본사 브랜드 이미지를 믿고 구매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사에 책임을 지우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본사는 출고하는 차량 가격과 인센티브, 또 딜러십 해지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이에 걸맞는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첫번째 사례의 경우 하자가 본사에서 딜러로 차량을 넘기기 전 점검 단계(PDI)에서 발견·조치된 점을 고려하면 고지의 의무는 본사에게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본사에 책임을 물으려면 개인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엔 사실상 방법이 없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값을 믿고 구매하는 것인데 사후 관리 책임을 등한시하는 것은 신뢰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