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명의로 휴대전화 개통돼 6년간 요금 인출 제주에 거주하는 문 모(여)씨는 최근 고령의 어머니 통장을 정리하다 모르는 번호로 통신요금이 이체된 내역을 확인했다. SK텔레콤으로 확인 결과 지난 2014년에 개통돼 지금껏 130만 원 가량이 인출된 상태였다. 지점에서 확인한 가입서에는 어머니의 서명이 위조되어 있었다. 문 씨는 "통신정보에 취약한 고령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대리점이 장난친 것 같다. 하지만 대리점과 고객센터 모두 서로 떠넘기기식 대응만 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 대리점 직원이 가입자 정보 이용 명의도용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 2월 자신의 명의로 휴대전화 3대가 추가개통됐다 해지된 사실을 알게 됐다. KT 대리점 직원이 김 씨의 명의를 도용해 개통한 단말기 3대는 이미 판매된 상태였다고. 김 씨는 "처음 문의시에도 내가 사용중인 단말기의 미납금이라고 거짓말해 요금을 대신 내기도 했다. 해지위약금 등을 내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어 이 문제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통신사의 렌탈서비스까지 명의도용 대구에 사는 박 모(여)씨는 최근 채권추심 통보장을 받고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렌탈 체납금이 400만 원 가까이 누적됐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연락을 끊고 지내는 친동생들이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티브로드 렌탈 서비스를 이용한 거였다. 박 씨는 “동생들이 전화 통화로 나인 것처럼 연기해서 담당자를 속였는데 이름만 확인했다고 하더라. 담당자 잘못은 인정돼도 요금 면제는 안 된다고 한다”며 답답해 했다.
명의도용에 의한 소비자 피해는 이동통신 서비스의 고질적 민원 중 하나다. 신분증 분실이나 대출, 온라인상 개인 정보 누출 또는 상대적으로 개인정보 파악이 쉬운 지인을 통한 명의도용 사례 등 다양하다. 대리점 직원이 가입 고객의 정보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명의도용 피해 금액은 수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용범들이 여러 대의 최신 단말기와 비싼 요금제를 쓰는 경우가 많고, 미납 요금 누적으로 인한 채권 추심 통보가 당사자에게 오기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해자인 소비자가 경찰 수사 등을 통해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명의도용 사고 발생의 경우 통신사들은 수사권이 없어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서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명의 도용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권이 없는 통신사가 자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봐야 한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신고한 후 도용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답했다.
KT 관계자는 “명의 도용 관련 피해 사례는 흔히 발생하는 문제가 맞지만 본사 입장에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서비스 가입 시 본인 주민등록증 사본과 실물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전화 확인 등을 거치지만 그럼에도 명의가 도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태를 빠르게 파악하기란 힘들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사권이 없는 통신사로선 피해자에 알려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 수사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후 본인의 귀책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미납금은 면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의도용을 악용하는 고객도 있어 무작정 면제를 해주기도 어려워 경찰 수사 결과를 우선하다는 것이 3사의 공통된 반응이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신분증을 빌려주는 등으로 명의도용 당한 경우는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휴대전화 등 통신상품 가입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이 경우는 ‘명의 도용’가 아닌 ‘명의 대여’로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각에서는 통신사들이 자사 고객 명의 도용 피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일부 대리점 직원 등의 일탈 행위에도 통신사 본사 측은 뒷짐만 지는 부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이동통신사업자들 약관을 살펴봐도 ‘본인여부 확인 소홀’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제 3자에게 일체의 요금 청구 행위를 할 수 없다거나, '타인의 명의를 도용했을 시 1년간 이용자격 정지를 명한다' 정도의 내용만 명시되어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명의도용이 통신사 가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터라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면서 “연체금 발생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들의 피해가 줄어들 수 있도록 연체 통보 시점을 앞당기는 등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관계자 역시 “요금 연체사실을 소비자가 빨리 알게 될수록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에 연체 통보 시점만 앞당겨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