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윤 모(여)씨는 롯데가전이라는 사이트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134만 원에 구매했다가 판매자가 잠적해 애를 태우고 있다. 배송될 때가 지나 연락하려 했지만 사이트가 폐쇄됐고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이다. 윤 씨는 "롯데통합쇼핑몰인 롯데온과 사이트가 유사하고 롯데가전이라 돼 있어 사기일 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전액 계좌 이체해 돈을 돌려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김 모(여)씨는 네이버 스토어에 입점한 업체에서 세탁기를 구매한 뒤 판매자에게서 "네이버스토어 재고가 없다. 우리 사이트에서 주문하면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판매자가 안내한 사이트는 LG전자 공식판매점이라 돼 있었고 LG전자 대표자 명이 써 있어 의심하지 않았다고. 김 씨는 "뒤늦게 확인해보니 대표 이름과 연락처 모두 도용한 사기 판매자였다. 플랫폼은 잘못이 없다고 하나 소비자로서는 억울하다"며 해결을 촉구했다.
가전몰 사칭한 사기 사이트가 판치면서 피해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가전제품 전문몰인양 둔갑해 할인을 빌미로 현금 결제를 유도하고 잠적하는 식이다. 유명 가전업체와 유사한 사이트를 만들어 공식 사이트인양 소비자를 속이거나 오픈마켓에 개인판매자로 입점한 뒤 사기 사이트로 유인하는 방식을 쓴다.
이들은 오픈마켓에 개인 판매자로 입점할 경우 사업자 등록이 필요 없다는 점과 쇼핑몰 사이트 제작이 용이하다는 점 등을 이용해 쉽고 교묘하게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누구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 상거래의 문턱은 낮아지고 있으나 악용하는 이들도 빠르게 늘고 있어 계도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25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공식 가전몰인 줄 알고 구매했다가 돈만 날리고 제품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마켓에 입점한 판매자가 재고 유무, 현금 결제 할인 등을 미끼로 공식판매사이트인양 사기 사이트로 유인하는 피해가 다발하는 상황이다. 주로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 대형 가전제품이 대상이다 보니 소비자 피해 규모도 큰 상황이다.
소비자고발센터에 제기된 가전몰 사칭 쇼핑몰 10곳을 조사해보니, 판매자들은 공통적으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가전제품을 최저가로 등록해 소비자들을 끌어 모은 뒤 네이버 톡톡(메신저)으로 별도의 쇼핑몰 사이트로 이들을 유인해 사기 판매 행각을 벌였다.
이들의 사기 판매 방식에서 알 수 있는 문제는 크게 2가지다.
먼저 오픈마켓 운영 방식의 허점을 노려 교묘하게 악용했다. 판매자들은 스마트스토어에 ‘법인 사업자’가 아닌 ‘개인 판매자’로 입점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마트스토어는 누구나 제품을 팔 수 있도록 등록 절차의 문턱을 낮춰 ‘개인 판매자’로 입점하면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스마트스토어 고객센터에 안내된 설명을 보면 개인 판매자로 입점했을 경우 구매확정 건수와 누적 판매액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통신판매업 신고 및 사업자 전환을 해야 한다. 사업자 전환이 되면 매출 수익 발생 시 세무서에 세금 신고 의무가 생긴다.
판매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스마트스토어에서 수익이 나지 않도록 소비자들에게 판매 제품들이 모두 ‘품절’됐다고 안내한 뒤, 자신들이 별도로 제작한 쇼핑몰 사이트로 유인했다. 즉, 스마트스토어란 플랫폼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는 신뢰성만 농락한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에 피해를 호소한 소비자들도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라 네이버가 인증한 업체인 줄 알았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네이버쇼핑 담당자는 "안전한 거래를 방해하는 판매자가 확인될 경우 내부 정책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 "네이버가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겨우 사기의 가능성이 있으니 절대 결제하지 말고 네이버페이 고객센터로 문의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문제는 쇼핑몰 사이트를 제작하는 게 지나치게 쉽고 간단하다는 점이다.
판매자들이 쇼핑몰 사이트 제작 시 정보통신제공 서비스 플랫폼으로 주로 이용한 곳은 A업체다. 기자가 직접 이 업체 사이트를 통해 쇼핑몰 사이트를 제작해보니 단 5분이면 충분했다. 업체 주소나 연락처는 물론 사업자등록번호, 통신판매번호까지 모두 허위로 기재해도 5분 만에 결제 시스템을 갖춘 쇼핑몰 사이트가 생성됐다. 기존 가전 업체의 상호나 명칭을 사용해 사이트 로고 및 도메인 주소를 제작해도 제재가 없었다.
쇼핑몰 사이트 창업자에 대한 사업자 등록 의무를 다룬 법률은 있지만, 사이트 제작 및 제작 플랫폼에 대해선 뚜렷한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도 청소년 유해 사항 등 내용에 관한 경고만 있을 뿐, 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사항은 다루지 않았다. 사이트 제작 대행업을 운영하는 한 사업자는 “만일 플랫폼 규제가 생긴다고 해도 요즘은 개인이 운영하는 쇼핑몰 사이트가 워낙 범람하고 있어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사기 판매자들의 교묘한 수단과 방법에 피해 사례가 폭증하자, 온라인 상거래의 낮아진 문턱이 이면에선 사기 행위를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상거래 전성시대가 도래한 만큼, 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규제도 함께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는 "제조사 측으로부터 공인된 가전제품을 판매 중인데 하루에도 '진짜냐', '진위를 밝혀라' 등의 메세지가 온다"면서 "사기 쇼핑몰은 소비자를 비롯해 오픈마켓이란 좋은 플랫폼에서 용기를 갖고 입점한 판매자들에도 피해를 준다. 차라리 입점 기준을 높여 판매자 자격을 갖춘 사람만 제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제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다른 판매자는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하지 않는 게 방치"라면서 "정보통신위원회는 해당 피해 사례들을 조속히 파악해 사전에 피해를 막아야 한다. 정상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들과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가 공개한 소비자피해 빅 데이터에서도 가전제품(컴퓨터·가정용전기제품·휴대폰 등) 관련 인터넷 쇼핑몰 피해 건수는 지난해 총 476건으로 2021년 대비 무려 117% 늘었다. 피해 내용은 주로 ▲사기·편취 ▲운영중단·폐쇄·연락불가 ▲계약취소·반품·환급 지연 등이다.
대기업 상호명을 사칭한 사기 쇼핑몰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가전 브랜드를 사칭한 쇼핑몰이 많은데, 이는 높은 단가로 거래되는 가전제품 특성상 짧은 기간에 큰 액수의 돈을 거머쥐고 잠적할 수 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센터가 공개한 가전제품 사기 판매 사이트도 2020년 3건에서 2021년 11건, 2022년 32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