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북 영주에 사는 신 모(여)씨는 로젠택배를 이용하며 신 씨가 지정한 ‘문 앞’이 아닌 건물 1층 계단으로 택배가 배송된 게 최근에만 다섯 차례라며 기막혀했다. 택배가 주민들의 발에 채이고 굴러다녀 손상되는 일도 발생했다고. 배송기사는 물론 지역 대리점과 고객센터에도 개선을 촉구했지만 지정 장소가 아닌 곳으로 배송되는 일은 계속됐다. 신 씨는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개선되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3. 서울 강북구에 사는 최 모(남)씨는 최근 택배가 도착했다는 롯데택배 측의 ‘배송완료: 문앞’이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현관문 앞 어디에서도 택배는 찾을 수 없었다. 아파트 전 호수 문 앞을 돌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고. 뒤늦게 최 씨의 택배뿐만 아니라 같은 동 아파트 주민들 택배까지 전부 1층 출입구 정면에 쌓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 씨는 “다른 아파트처럼 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을 금지시킨 것도 아닌데 배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당황스러워했다.
#4. 부산 수영구에 사는 김 모(여)씨는 최근 자신이 근무하는 건물 5층 사무실로 택배 배송을 요청했고, 이후 한진택배로부터 ‘배송완료’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사무실 앞에 배송됐다는 택배는 보이지 않았다. 택배 기사에게 물어보니 ‘일이 바빠 1층에 놓고 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1층 현관은 분실 위험이 크니 5층 사무실로 배송해달라’"고 요구했다며 "배송비에는 고객에게 안전하게 택배를 전달하는 비용까지 포함돼있다"고 꼬집었다.
택배사들이 '지정 장소 배달'을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 중이나 지켜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 유명무실하다는 소비자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택배사들은 배송 전 문자메시지나 알림톡을 통해 △문 앞 △경비실 △무인택배함 △직접 수령 등 구체적인 수령 장소를 수취인이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선택한 수령 장소에 배송하지 않는 일이 빈번해 불만이 쌓이고 있다.
'지정 장소 배달'은 택배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보상 등을 요구할 순 없다. 택배 기사가 지정된 장소를 지키지 않았다가 분실사고가 일어난 경우에만 배상책임이 따른다.
택배사들은 배송 기사의 업무가 바쁘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고객이 지정한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배송될 수 있다면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경우 지역 대리점에 개선을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16일 소비자고발센터(http://m.goso.co.kr)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제기된 택배사 관련 불만은 총 600여 개가 넘는다. 가장 몸집이 큰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젠택배, 우체국택배, 경동택배 등 업체를 가리지 않고 불만이 다발하는 모습이다. 가장 빈번히 제기되는 문제는 배송 시 고객이 원하는 지정 위치에 택배를 가져다 두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택배 수령 장소를 '문 앞'으로 지정했는데 건물 1층에 두고 간다거나 경비실에 놓고 가 찾느라 애를 먹었다는 주장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택배사들은 기사가 고객이 원하는 배송 위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민원이 많지만, 배송 기사들의 업무 사이클이 촉박하거나 엘리베이터 고장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배송 위치가 바뀔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택배사 관계자는 “고객이 지정한 장소로 택배를 배송하는 게 원칙상 맞다”면서도 “기사가 당일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는데 고층 집 앞 배송을 해야 할 경우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다른 위치에 배송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경비실이 택배를 받지 않는데 경비실로 배송 위치를 정하거나 분실 위험이 있는 곳에 택배 배송을 요청하는 등 배송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택배사들은 수령 장소를 선택하는 페이지에 '상황에 따라 신청 장소에 배달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미리 알리고 있다.
택배사들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택배표준약관'에도 지정 장소로 배송해야 한다는 의무를 정한 내용은 없다.
다만 15조에 따라 수취인 부재 시 배송기사와의 합의 하에 다른 장소로 배송할 수 있는데, 만일 택배기사가 수취인과 별도 연락을 하지 않고 원래 배송지가 아닌 곳으로 임의 배송했다가 택배가 분실되면 배송 미흡으로 기사가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택배사들은 해당 고객 불만이 고객센터 등으로 접수가 되면 대응방식도 모두 동일하게 각 지역 대리점에 문제 개선을 촉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이기에 본사가 직접 나서 강제적으로 조치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택배사는 “택배기사들에게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정 위치에 배송하지 못할 시 고객과 사전 협의를 통해 갈등을 방지해야 한다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