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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소비자, 뒷짐진 본사⑩-아파트] 공사별로 하청업체 제각각...하자 원인 규명 어려워 책임 핑퐁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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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소비자, 뒷짐진 본사⑩-아파트] 공사별로 하청업체 제각각...하자 원인 규명 어려워 책임 핑퐁 일쑤
브랜드 믿었는데 문제 생기면 시공사·협력업체로 미뤄
  • 김승직 기자 csksj0101@csnews.co.kr
  • 승인 2021.05.3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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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쇼핑이나 배달앱, SNS 등 온라인 중개 서비스(플랫폼)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상품 공급자 외에 플랫폼 제공 기업에도 책임을 묻는 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플랫폼 운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이다. 그러나 온라인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리점과 프랜차이즈 가맹제도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믿고 거래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경우 본사는 가맹점 뒤에 숨어 뒷짐을 지고 있기 일쑤다. 법적으로 본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도 전혀 없어 소비자 피해 구제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은 2021년 ‘뿔난 소비자, 뒷짐진 본사' 기획 시리즈를 통해 가맹제도에 따른 소비자 피해 연대 책임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 안산에 사는 김 모(여) 씨는 지난해 말 A아파트에 입주한 후 변기 결로·누수 문제로 골치를 앓아왔다. 구조적으로 물청소를 하면 안 되는 변기가 습식화장실에 설치돼 물청소 후 제품 뒤쪽에 물이 고이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건설사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변기제조업체에 문의하라며 선을 그었다. 변기업체는 현장에 방문한 뒤 제품 자체 불량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김 씨는 사비를 들여 기존 제품을 물청소가 가능한 변기로 교체했다. 김 씨는 “변기는 위에 물을 뿌려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습식화장실에 물청소하면 안 되는 제품을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청소 시 주의하라는 답변으로 일관해 결국 내 돈으로 변기를 교체했다”고 하소연했다.

# 경남에 사는 김 모(여)씨는 지난 2019년 입주한 B아파트에 설치된 거실 창호 문제로 1년 넘게 고통받고 있다. 커튼을 치고 보일러를 틀어도 실내온도가 22도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겨울에는 외풍이 더 심해져 수면양말을 신고 점퍼를 입고 생활해야 했다고. 건설사에 하자 접수해도 정상 시공됐다며 오히려 김 씨의 예민함을 탓했다고. 결국 건설사는 직접 국토부에 청원을 올려 점검 받거나 창호업체에 직접 민원을 제기하라며 등을 돌렸다. 김 씨는 "건설사에서 시공한 창호 문제를 왜 국토부에 문의해야 하느냐, 창호업체는 자재만 제공했을 뿐인데 왜 그쪽에 문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기막혀했다.

# 부산시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해 8월 C아파트에 입주한 이후 지금까지 붙박이장 가구에 벌레 유충이 발견돼 고통받고 있다. 건설사에 도움을 청할 때마다 방역을 진행했으나 문제가 사라지지 않아 가구업체에 문의하라며 책임을 돌렸다. 붙박이장을 설치한 가구업체에서는 제품에는 문제가 없고 건설사의 관리소홀로 발생된 문제로 판단했다. 김 씨는 "건설사에 붙박이장 전면 교체를 요청했지만 어렵다고 하더라"며 "가구업체도 건설사도 책임지지 않으면 이 문제는 입주민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오 모(남)씨는 지난해 6월 D아파트에 입주한 후 수차례 벽지 스크레치 하자에 대한 보수를 요청했지만 10개월이 지난 올해 4월에야 AS를 받을 수 있었다. 협력업체를 선정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고 선정 뒤에도 협력업체 측이 자재가 없다고 해 보수가 차일피일 지연된 것이다. 오 씨는 “하자보수를 접수할 때마다 ‘업자를 섭외 중이다’라거나 ‘자재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보수가 미뤄져 대책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건설사와 하청업체간 핑퐁 게임으로 아파트 하자 보수가 지연되거나 책임이 불명한 하자에 대한 건설사와 협력업체, 입주민간의 의견차이로 보수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는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한화건설, 한신공영 등 대형 건설사에서부터 대방건설, 한양, 서희건설, 중흥건설 등 규모나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하자보수 관련 소비자들의 다양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

보통 건설사는 아파트를 시공하면서 도급계약을 통해 마감·주거시설 등을 시공·설치하는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하자책임과 관련해선 균열·침하·파손·들뜸·누수 등 건축 상의 문제면 건설사가 보수하고 타일·벽지·장판·현관·창호 등 시공 상의 문제면 하청업체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또 건설사는 이 계약을 통해 하청업체가 시공상의 하자를 보수하도록 보증한다.

공동주택관리법이 정의하는 하자 범위 및 하자담보책임기간은 ▲마감공사에 들어가는 도배, 미장, 타일, 수장, 도장, 주방기구, 가전제품 등은 책임 기간 2년 ▲그 외 공동구 공사, 창문틀, 승강기, 저수조 공사, 옥외 급수, 배관설비, 냉난방 설비 소방시설 공사, 가스설비 홈네트워크 , 천장·바닥의 단열공사 등은 책임 기간 3년 ▲철근콘크리트 공사, 철골공사, 지붕공사, 방수공사 등은 책임기간 5년이다.

건설사와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원인이 명확한 하자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책임 주체가 보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자의 상당부분이 원인과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고 이럴 경우 서로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 하자보수 작업이 원활히 진행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게 현실이다.

주로 분쟁이 생기는 하자는 가구 탈락, 창호 결로, 현관문 뒤틀림, 욕조·변기 파손 등 생활 문제다.

일반적으로 입주민이 건축·시공 상의 하자를 주장하면 건설사·협력업체 직원이 현장을 방문해 원인을 분석하지만 방문에 오랜 시간이 소요돼 입주민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소형건설사의 경우 직원을 파견해 하자 원인을 파악하는 절차도 생략하고 입주민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불만도 있었다.

또 하자 원인이 명확한 경우에도 협력업체가 도산해 건설사가 대체업체를 선정하느라 보수가 지연되는 사례도 있다. 입주 초기 하자보수가 밀리는 시기에 협력업체 인력부족으로 보수가 하릴없이 늦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건설사 관계자들은 “도급계약에 하자 책임에 대한 항목이 명시돼 있어 이에 따라 보수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하자 원인이 불명확한 경우 시비를 가리지 않고 보수부터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들은 별도의 AS팀을 마련해 권역별로 운영하는 등 민원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귀책 사유가 명확한 경우 법령에 따라 보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자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보험사를 통한 손해평가나 건설사·협력업체·입주민 등 3자간의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이 경우 보수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공동주택관리법은 하자 종류와 이에 따른 보수기간 및 책임주체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를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충분히 세분화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아파트 하자는 종류와 그 원인이 다양해 책임 주체 판단이 어렵다"며 "하자분쟁이 생긴 경우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나 한국소비자원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승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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