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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과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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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과 노무현
  • 김영인 기자 kimyin@consumernews.co.kr
  • 승인 2006.12.2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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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기'에 나오는 얘기다.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던 손오공은 때아니게 날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을철인데도 선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란 것이 없었는데도 날씨가 이상했다.

    저팔계가 아는 척하고 나섰다. "해가 지는 곳에 사하리라는 나라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해가 지는 서천 쪽으로 가고 있다. 해가 가까워져서 날이 더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하리에 도착할 때가 된 것 같다."

    손오공이 윽박질렀다. "어림도 없다. 삼장법사처럼 아침에 3리, 저녁에 2리씩 걷다가는 갓난아이가 할아버지가 되고, 다시 태어났다가 할아버지가 되기를 3번이나 되풀이해도 도착할 수 없다."

    손오공의 말이 맞았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사하리가 아니라 화염산이었다. 사방 800리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이었다. 화염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불길에 휩싸여 있는 산이었다. 그래서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일행은 이곳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손오공이라면 간단하게 돌파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불 속을 뚫고 산을 넘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궁리 끝에 파초동에 있는 나찰녀를 찾아갔다.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芭蕉扇)이라는 부채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찰녀는 파초선을 빌려주는 대신 손오공을 향해 흔들어 바람을 일으켰다. 손오공은 부채바람에 밤새도록 날려가 소수미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무려 5만리를 날려간 것이다. 보통사람은 부채질 한번에 8만4천리나 날려간다고 했다. 파초선은 무서운 무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손오공은 다시 나찰녀에게 갔다. 이번에는 하루살이로 둔갑해 찻잔에 붙어 있다가 나찰녀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나찰녀의 몸 속에서 이곳저곳을 마구 찌르고, 희한한 곳을 건드려댔다. 원숭이의 야릇한 장난이었다.

    나찰녀는 견디지 못하고 파초선을 내놓았다. 하지만 '가짜' 부채였다. 부채질을 할수록 불길은 오히려 더욱 타올랐다. 손오공은 엉덩이 털만 태우고 말았다.

    두 번이나 실패한 손오공은 작전을 바꿨다. 나찰녀의 남편인 우마왕으로 둔갑했다. 어렵게 진짜 파초선을 얻을 수 있었다. 손오공은 화염산을 향해 파초선을 49번 흔들어댔다. 그제야 그 무섭던 불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손오공은 일찍이 천상에서 말썽을 피우다 붙들린 적이 있었다. 태상노군은 손오공을 화로에 넣고 49일 동안 구웠다. 바짝 태워서 손오공이 있었던 흔적마저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렇다고 재가 될 손오공이 아니었다. 화로 속에서도 건재했다. 단지 연기 때문에 눈알이 빨갛게 변했을 뿐이었다.

    태상노군은 손오공이 충분히 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로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손오공은 화로를 박차고 뛰어나왔다. 그 때 벽돌 몇 개가 지상으로 떨어져 남은 열기로 화염산이 되었던 것이다.

    손오공은 자기가 지른 불 때문에 삼장법사 일행을 고생시켰다. 그렇지만 결국은 자기가 지른 불을 자기가 끄게 되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또 국민을 실망시켰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에 고건 총리를 기용한 것을 '실패한 인사'였다고 했다. 김근태·정동영 두 의장을 내각에 뽑아놓았다가 욕만 얻어먹었다고 했다. 전직 국방장관 등에게는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는 보도다.

    더구나 대통령은 탁자를 내리치고, 분노를 삭이지 못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고 한다. 감정이 격한 탓인지 "난데없이 굴러온 돌이라며 흔들어댄다"고 흥분하기도 했다는 보도다. 국민에게는 마치 '신세한탄'처럼 들리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인사권자가 인사를 잘못한 것이라며 오히려 스스로를 꾸짖었어야 했다.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했거나, 아니면 손오공처럼 자기가 지른 불을 자기가 진화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국민도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오히려 국민을 향해 불평을 한 셈이다. 가뜩이나 레임덕을 맞고 있는 대통령이다. 남은 임기 동안 매듭을 잘 지어야 할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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