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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래가 약가인하 실효성 의문...저가구매장려금 제도만으로 절감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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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래가 약가인하 실효성 의문...저가구매장려금 제도만으로 절감 충분"
  • 김경애 기자 seok@csnews.co.kr
  • 승인 2021.09.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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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제약사에서 특별한 위법 행위가 없는데도 약가인하라는 불이익 처분을 중복해서 받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30일 열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합리적인 약가제도 모색을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의약품규제과학센터장)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이 같이 지적했다.

이재현 교수 분석에 따르면 초 세 번에 걸쳐 이뤄진 실거래가 약가인하에서 품목 수 기준 상위 10개 제약사는 거의 변동이 없고, 이들 제약사는 평균 3분의2 이상의 품목에서 약가가 중복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현 교수는 "지난해 약가 인하된 3924개 품목의 71%인 2795개 품목은 2018년에도 인하됐는데, 1893개 품목은 2016년에도 인하된 품목이다. 중복 인하된 품목은 주사제가 44~48%를 차지해 특정 품목과 주사제에 대한 약가인하 쏠림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총 세 번에 걸쳐 이뤄진 실거래가 약가인하 결과, 평균 4061개 품목에 대해 평균 1.5%의 약가를 인하해 평균 1081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이룬 것으로 집계됐다.

이재현 교수는 "이로 인해 정부는 과도한 행정 부담을, 제약사는 돌이킬 수 없는 약가인하를, 도매상과 약국에는 불필요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
정책 세미나는 약가관리 제도 가운데 약가 적정성을 확보하고자 도입된 '실거래가 약가인하'의 운영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제도 전면 폐지 또는 합리적 조정 범위 도입(Reasonable zone, R Zone), 제네릭 출시 전까지 신약 약가인하 유예 등의 보안을 요구하고자 마련됐다.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요양기관(병원, 약국 등)에서 의약품을 구입하면 실제 거래 가격에 맞춰 약값을 조정하는 제도다. 2년 주기로 시행되며 2016년과 2018년, 2020년 등 세 번에 걸쳐 약가인하가 이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요양기관 청구 내역을 근거로 산출한 의약품별 가중 평균가격이 기준 상한금액보다 낮으면 약값을 낮추는 식이다.

그러나 약품비는 저가로 약을 구매하는 요양기관에 장려금을 지불하는 '저가구매장려금 제도'로 이미 절감되고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저가구매장려금 제도를 통해 절감한 약품비는 2018년 상반기에만 1276억 원에 이른다.

요양기관에 장려금을 지불하고도 적지 않은 약품비 절감 효과를 얻는데 제약사 약가를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로 다시금 인하하는 것은 정책적 차원의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거래가 약가인하를 위한 조사는 모든 의약품이 대상이지만 현재 인하되는 품목은 주사제와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약품에 집중되고 있다. 국내 의약품 유통 특성상 제약사 실거래가 예측이 불가능하며 다수 품목의 동시 약가인하로 제약사·도매업체·약국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도 지적된다.

국산 신약의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약가 인하는 신약 연구개발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 기조에도 반한다고 했다. 국산 신약은 세 번의 실거래가 약가인하에 따른 평균 인하율이 0.65%로, 한 품목을 제외하고 모두 1.0% 미만으로 인하돼 약가인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세 번의 실거래가 약가인하 품목 수 상위 10개 제약사 및 국산신약 인하율(표: 이재현 교수 발제 자료)
▲세 번의 실거래가 약가인하 품목 수 상위 10개 제약사 및 국산신약 인하율(표: 이재현 교수 발제 자료)
또 요양기관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조사되는 실거래 의약품 가격은 제약사의 출하 가격이 아닌, 도매상 판매가로서 제약사와 무관한데 이를 약가인하 근거로 삼는 것이 논리적으로 부당하다고 했다. 

실거래가 조사 과정에서 도매상이 실제 구입한 가격 미만으로 의약품을 판매해도 도매상은 처벌받지 않고 피해를 제약사에서 부담해 시장질서 왜곡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의약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과 6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보험약가 사후관리 제도 개선을 위한 델파이 조사'에서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는데, 제도를 부분 개정하거나 보완하자는 의견이 좀 더 높았다.

제도 보완의 경우 R-zone(합리적 조정 범위) 도입이 거론됐는데 일본(2%→5%)을 참조해 최소 2%에서 5% 사이로 R-zone을 정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다. 이 경우 인하율 상한선(10%)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재현 교수는 "정부는 약가관리 제도 당사자인 제약업계와 협의해 사후관리 제도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과 생산적인 제도, 예측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패널 토론에는 약국과 유통은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와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 제약사는 이병태 HK이노엔 팀장, 언론사는 최은택 뉴스더보이스 대표, 정부기관은 김애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 양윤석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이 참여했다. 좌장은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가 맡았다.
 

▲(왼쪽부터) 좌장을 맡은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 발제자로 나선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 토론자인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 양윤석 복지부 보험약제과장, 김애련 심평원 약제관리실장, 최은택 뉴스더보이스 대표, 이병태 HK이노엔 팀장
▲(왼쪽부터) 좌장을 맡은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 발제자로 나선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 토론자인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 김덕중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 양윤석 복지부 보험약제과장, 김애련 심평원 약제관리실장, 최은택 뉴스더보이스 대표, 이병태 HK이노엔 팀장
오인석 대한약사회 보험이사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가 야기하는 약국의 재정 손실에 대해 토로했다. 저가로 약 구매 시 장려금을 지불하는 '저가구매장려금' 제도는 약국의 경우 실효성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인석 보험이사는 약가 차액으로 인한 재정 손실과 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재고 약 정리 후 처방전이 왔을 때 약이 없어 겪는 재정적 손실 등을 지적하며 "이해 관계자들이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약가 제도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제도를 정부에서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 부회장은 이재현 교수의 발제 내용에 대해 반문했다. 만일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를 지속한다면 국공립 요양기관도 포함해 유통업계 고충을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병태 HK이노엔 팀장은 적정 수준의 R-zone 도입과 타 제형과의 적정성을 고려한 주사제 인하폭(현재 30%) 조정, 신약개발 의지를 이어가기 위한 세제 혜택과 특허기간 연장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병태 팀장은 "약가인하는 제약사 매출 하락과 직결되는데, 단순한 이익 감소가 아닌 신약 개발 의지를 꺾는다.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축소되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신약개발 속도는 자연 지연된다.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기업에 확실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혁신형 제약기업 감면율이 최대 50%로 정해져 있는데 이 규모를 좀 더 확대해달라.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결과물을 창출하는 회사에는 약가인하 면제까지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이병태 HK이노엔 팀장은
▲이병태 HK이노엔 팀장
최은택 뉴스더보이스 대표는 실거래가 약가인하 제도 폐지까지 언급했다. 특정 영역에 약가인하가 편중된 것은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면서 "저가구매 장려금과 제약사간 상한선 내 가격경쟁 활성화가 재정절감 취지에 더욱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최은택 대표는 "LG생명과학 신약 '제미글로'는 등재 후 매년 약가인하를 거쳤다. 현 보험약가는 최초 약가 대비 17.9%나 인하됐다. 특허가 만료되면 40% 더 인하될 예정이다. 정부는 글로벌 신약에 대한 보험약가 우대정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애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복지부와 함께 관련 정성적·정량적 연구를 진행해 제도를 평가하고, 실증데이터 검증을 통해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김애련 실장은 "업계의 아쉬움이 많은 것을 이해한다.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행과 같은 약가인하를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양윤석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실거래가 약가인하는 20년 역사를 가진 제도이며 그 취지를 고려하면 폐지보다는 대안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약제비는 20조 원에 이를 정도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사후관리 기전이 없으면 약품비 증가에 대한 합리적인 관리가 과연 가능하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양윤석 과장은 "제도를 운영하면서 과도한 행정비용과 품목간 불균형 등을 고민하고, 개선점을 보고 있다. 심평원과 같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협회와 업계 관계자 의견을 듣고 수용 가능한 내용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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