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이 낮은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기 위해 디폴트옵션이 도입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디폴트옵션은 회사와 근로자가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이 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퇴직연금(IRP)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올해 9월 말 기준 은행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누적 적립액은 31조822억 원으로 1년 전이던 작년 9월 말 대비 7배 이상 급증했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6조135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 5조8463억 원 ▲기업은행 4조8676억 원 ▲하나은행 3조5444억 원 ▲농협은행 3조2396억 원 ▲우리은행 2조6923억 원 순이었다.
적립액은 크게 늘었지만 자산 편중도는 은행권 전체 누적 적립액의 90% 정도가 초저위험형에 몰려있다. 9월 말 기준 은행권 디폴트옵션 누적 적립액 31조822억 원 중에서 27조8049억 원이 초저위험형이었다. 비중으로는 89.5%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는 저위험형이 1조7789억 원(5.7%)이 많았고 중위험형은 1조833억 원(3.5%), 고위험형은 4151억 원(1.3%)에 그쳤다.
여전히 자산 중 절대 다수는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형에 몰려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은행 퇴직연금 시장과 유사한 흐름이다.
반면 증권사 디폴트옵션의 경우 전체 누적 적립액 1조2900억 원 중에서 초저위험형이 7014억 원(54.3%)으로 절반을 넘는 정도였다. 저위험형은 2883억 원(18.5%), 중위험형도 2273억 원(17.6%) 등으로 상대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은행권에서도 디폴트옵션 제도가 기존 퇴직연금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트리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 수요가 몰렸던 작년 연말 은행별로 대대적인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가입자 모으기에 나섰다.
그러나 원금보장형 상품에 익숙한 고객들이 디폴트옵션에 가입하고서도 원금보장형을 선택하는 수요가 많았고 결과적으로는 고객 수익률 제고보다는 단순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디폴트옵션이 전락한 셈이다.
고객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6대 은행 초저위험형 포트폴리오 1년 수익률은 3.41~3.55%에 머물렀는데 이는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와 비슷하다. 반면 중위험형 이상 포트폴리오는 1년 수익률이 10%를 상회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디폴트 옵션에 가입된 금액은 실제 수요에 의해서가 아닌 은행 마케팅에 의해 유입된 자금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면서 "디폴트옵션을 디테일하게 아는 극소수 고객만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은행 입장에서는 원금보장 성향이 강한 고객이 몰리는 특성상 상황에 따라 손실을 볼 수 있는 저위험형 이상 디폴트옵션을 권유할 유인도 마땅치 않다.
더욱이 최근 코스피 지수 급락으로 주식이나 펀드를 편입한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에서는 H지수 ELS 사태로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여부에 대한 수위를 저울질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배당형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을 때 고객 항의가 많이 들어올 정도로 고객에게 원금보장형을 먼저 권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개별 은행이나 업권이 아닌 퇴직연금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개선될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