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에서 서행 전진하려는데 굉음내며 돌진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장 모(남)씨는 2015년식 SUV 차주다. 자택 인근 주차장에 차량 이동을 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자동차 클러치를 P에서 D로 이동 후 엑셀을 살짝 밟았지만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엑셀에 힘을 줘 밟는 순간 굉음과 함께 차가 튀어나가는 바람에 주차장 전방에 있던 고목나무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차량 운전자쪽 범퍼와 보닛 등이 박살났다. 급발진 사고로 접수한 후 서비스센터에 차량을 입고시켰고 얼마 후 "전자장치에 대해 모든 점검을 해 본 결과 모두 정상"이라는 답을 받았다.
장 씨는 "당시 목격자들 모두 차량 급발진을 의심하고 있는데 무조건 정상이라고 하니 운전자 입장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회사 차원의 검증과 구체적 답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후진하려는 데 느닷없이 앞차로 돌진 인천 서구에 사는 박 모(남)씨는 최근 2015년식 소형차를 주차중 사고를 겪었다. 앞에 차가 있어 정지하고 후진하려던 순간 '부앙' 소리와 함께 앞 차에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앞범퍼와 그릴 보닛이 모두 찌그러졌다.
차가 서려고 하는 순간부터 부딪히는 순간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차 시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고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증거라고 박 씨는 주장했다. 반면 서비스센터에서는 박 씨의 운전 실수라고 몰아붙였다. 서비스센터는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아서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했다.
이를 납득하지 못한 박 씨는 따로 공터에 가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아봤지만 차량은 이동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따져 묻자 서비스센터측은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고.
박 씨는 "자동차 급발진을 나더러 입증하라고 해 놓고 정작 어떤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며 "또다시 급발진이 일어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급발진이 의심되지만 서비스센터나 회사 측은 무조건 운전미숙을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제기돼 왔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아무런 대책 마련도 없는 상태다. 레몬법 도입으로 입증책임 전환 등 소비자 권리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여전히 소비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급발진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급격한 가속이 정지상태 혹은 서행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자동차에 전자제어엔진 등 각종 전자장치가 도입되면서 급발진 사고가 등장했다.
급발진의 원인은 운전자의 착각, 페달이 다른 물체에 끼여 움직이지 않은 경우,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 및 스로틀 밸브 조절장치 이상, 전자장비 고장, 디젤엔진 윤활유의 실린더 침투 등 매우 다양하다. 자동차 급발진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심각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의 80%는 운전자 실수, 나머지 20%를 실제 급발진 사고로 보고 있다. 연간 보고 건수는 약 400건 내외 추정된다. 하루에 한 건 정도로 적지 않은 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인정하거나 피해자가 제대로 보상받는 경우 전무하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 이후 재연이 불가능하고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밝혀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레몬법에서조차 급발진 사고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레몬법은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됐을 때 이는 애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6개월 지나서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는 점도 불리한데다 6개월 이내라 하더라도 제조사가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운전 실수로 몰아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자제어장치는 사고 발생 후에도 흔적이 남지 않아 재연이 불가능하고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소비자가 이를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동차 회사가 '운전자 실수'라고 치부해버리면 소비자가 대응할 방법은 소송뿐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급발진사고 관련 소송에서 운전자가 100% 패소했다.
자동차 급발진은 수년간 계속 문제 제기 돼 온 이슈지만 사실상 정부가 손을 놓아버린 이슈다. 지난 2012년 국토교통부가 급발진 문제에 대해 민관합동 조사단을 꾸렸지만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급발진 민관합동 조사단은 2012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1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3차례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모두 ‘원인 불명’으로 결론냈다. 이후 급발진 사고 규명은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의 몫이 됐다. 현재 정부는 대부분의 사고에서 급발진 사고가 운전자 실수라는 결론을 내고 자동차사에게 급발진에 대한 어떠한 주의나 경고도 주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은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소비자가 리콜센터에 신고하면 전수조사를 하긴 하지만 1차적인 수사는 경찰에 있으며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국토부에는 접근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르노삼성, 한국지엠, 쌍용자동차 등 자동차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 분쟁을 줄이자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기록장치라고 알려진 EDR(Event Data Recorder)을 활용할 수도 있다. EDR은 제작사가 자사 차량의 에어백 전개과정을 보기 위해 탑재한 프로그램인데 사고기록장치로도 사용되고 있다.
대림대학교 김필수 교수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관심과 소비자 중심의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며 "급발진 사고의 경우 소비자가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증책임을 자동차 제조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조사가 EDR 등 저장장치를 활용해 급발진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