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천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유 모(여)씨는 지난 2020년경 구매한 LG전자 벽걸이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져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수리 기사는 ‘안전상 이유로 사다리차·스카이차량 모두 부를 수 없다’면서 ‘실외기를 난간으로 이전 설치해야 수리가 가능하나 비용은 고객 부담’이라고 안내했다. 이러한 상황을 본사에 항의해도 이전설치하지 않으면 수리가 어렵다는 기사의 입장과 같았다. 유 씨는 “실외기를 설치할 당시 향후 수리가 불가능할 수 있단 걸 알았다면 그 위치에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3. 부산 중구에 사는 양 모(남)씨는 최근 캐리어 에어컨을 사용하던 중 고장이 나 수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수리기사는 실외기 부착 위치가 수리가 불가능한 장소라며 수리를 거부했다. 양 모씨는 “실외기 설치할 땐 아무 말 없다가 수리 하려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을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해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에어컨 수리가 몰리고 있는 가운데 가전업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수리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흔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도록 한 법률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후 가전업체들은 고층 작업이 수반되는 에어컨 고장과 관련해 AS기사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 위험한 작업은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아예 실외기 수리를 받지 못하거나 사설업체 수리 또는 사설업체를 통한 이전설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업체들은 "전문 수리인력들과 논의를 거쳐 최대한 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수리기사들의 안전 보장이 최선이기 때문에, 수리 불가 시 실외기 환불을 통해 고객과 원만한 협의를 해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26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여름철 에어컨이 고장났지만 수리기사가 실외기 설치 위치상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별다른 조치 없이 되돌아갔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듬해인 지난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민원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고층 건물 외부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는 일반적으로 스카이차량(사다리차)을 통해 실외기를 지상으로 내려 수리를 진행한다.
다만 건물 옆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등 건물 간의 거리가 좁아진다면 스카이차량 진입이 어려워진다. 실외기를 실내로 옮겨 수리할 수도 있으나 실외기와 연결된 배관을 절단하거나 늘여야 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만일 스카이차량 이용과 실외기를 실내로 옮겨 수리하는 방식 모두 불가능할 정도로 수리 현장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수리 기사 안전 보장을 위해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법안으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종사자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의무를 지는 걸 내용으로 한다. 만일 이를 위반하면 1명 이상 사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한 사고에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 급성중독 등으로 1년 이내에 3명 이상 사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소비자들은 공식서비스센터가 수리를 거부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사설업체를 통해 수리를 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제품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하거나 제대로 수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온전히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또 사설업체를 통해 수리를 받을 경우 향후 공식서비스센터를 통해 서비스를 진행할 시 유상수리를 받아야 하는 등 제한이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실외기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실외기 가격을 사용기간에 따라 감가상각해 환불하고 회수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캐리어에어컨 고객이 타업체를 통해 실외기를 분리시키면 제품 수리를 진행하고 있으며, 사설업체의 수리 이후라도 공식 부품을 사용했다면 향후 서비스센터 수리 시 불이익이 없이 동일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가전업체 관계자는 "실제로 실외기 수리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는 수십만건 중에 한 두건 정도"라면서 "다만 수리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사내 전문 인력과 논의를 거쳐 최대한 수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도입된 후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때 향후 스카이차량이 진입을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수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고객에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