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통제까지 겹치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기업환경이 안갯속에 갇히게 됐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이들 기업이 참여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및 미국 공장 건립 등 주요 프로젝트들도 잇따라 차질을 입을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되기로 했던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 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 특별법)’이 소위조차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립이 심화되면서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했다.
반도체 특별법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반도체 연구개발(R&D) 종사자에 대한 주52시간 근로 규제 완화를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 11월 여야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급변하는 글로벌 무역 환경에 맞서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을 싣기 위해 추진됐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설비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비 부담을 덜 수 있다. 또 근로 시간 완화를 통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이들 기업의 당장 4분기 실적은 물론 내년 실적까지 타격이 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쟁국인 대만과 중국의 추격으로 하반기 반도체 업황이 둔화된 가운데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HBM 수출 규제까지 겹친 상황 속에서 반도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연말 ‘골든 타임’을 놓칠 거란 우려에서다.
양 사가 참여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시기 역시 밀릴 거란 관측도 나온다. 전력 공급을 책임질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법) 또한 반도체법과 마찬가지로 논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9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의 4분기 매출은 77조8000억 원, 영업이익은 13조2390억 원으로 기존 실적 추정치보다 하향 조정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매출 13조2390억 원, 영업이익은 7조3090억 원으로 기존 전망치보다 낮췄다. 양사 실적 모두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선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보다 낮다. 내년 실적 역시 정국 혼란 장기화 우려로 컨센선스보다 훨씬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진투자증권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은 둔화하고 있고 수출 통제 등 부담까지 더해지고 있다”면서 “여기에 우리나라는 계엄 발동과 해제, 지도자 공백이라는 초현실적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국내외적 리스크를 감안할 때 실적 전망 하향과 밸류에이션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별법 리스크 외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급등한 원·달러 환율 여파로 원자재 값 상승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원자재 구매액은 79조8937억 원, SK하이닉스는 11조1056억 원에 이른다. 원자재값 인상은 완제품 인상으로 이어져 실적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장비나 소재 부품 등의 수입과 수출 모두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반도체 특별법 논의까지 늦어질 경우 기업들 차원에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