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 정부·정치권의 밸류업 기조에 발 맞추는 듯 하던 MBK가 돌연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한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MBK 측은 25일 “집중투표제 도입과 동시에 같은 날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려아연이)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소수주주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꼽히는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라고 판단,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MBK가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것은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경우 MBK의 적대적 M&A와 투자금 회수 등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간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M&A 명분으로 내세웠던 MBK로서는 앞뒤가 맞지 않은 입장을 표명한 게 된다.
일각에서는 MBK가 집행임원제와 이사회 장악을 위해 자신들이 추천한 14명의 이사 선임의 건 외에 주주가치 제고나 소액주주들을 위한 안건을 하나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아연의 현 이사회가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자 당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감사 선임 등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3%까지만 의결권을 인정해주 ‘3%룰’이 적용되면 MBK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더 유리하다.
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0.97%를 보유하고 있지만 영풍(25.42%), MBK의 특수목적회사(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7.82%), 장형진 고문(3.49%) 등이 나눠 가지고 있다. 이들의 의결권은 각각 3%로 제한된다.
최 회장 측은 지분을 가족들과 나눠갖고 있어 3%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기관투자가 등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하면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는 게 가능하다.
MBK 측은 집중투표제의 취지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번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에 따른 것으로 법적, 실무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건부 집중투표 청구(정지조건부 주주제안)는 다수 사례가 이미 실행됐을 정도로 선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MBK 측 이외 주주들 역시 집중투표제 도입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전망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해 온 만큼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MBK 역시 실제 임시 주총에서는 국내 대기업 전반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만큼 집중투표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정부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권장해 오고 있다. 정부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지난 2019년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공개를 의무화하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이 적을 때는 집중투표제가 사모펀드에 유리할 수 있는 제도지만, 반대로 사모펀드 입장에서 1대 주주 등으로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경우 불편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