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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 여성변호사가 바라본 '사랑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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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 여성변호사가 바라본 '사랑과 전쟁'
  •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11.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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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경험이 있어. 두 번이나 이혼해봤거든. 이건 생사를 건 결투야. 잘못하면 양쪽 다 다칠 수도 있어. 자네, 그거 알아? 나도 전처한테 고환 한쪽을 붙잡혀서 아직도 날만 궂으면 은근히 통증이 있다고.” “저는 오래 못 버틸 것 같아요. 지칠 대로 지쳤어요. 뇌수와 심장, 피부까지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양보는 입술을 깨물고 허공을 움켜잡는 시늉을 했다.

 

“머리를 쓰라고, 머리를.” 라오진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전처는 그때 하마터면 미칠 뻔했어. 나도 꽤나 무서웠지. 그래서 내가 무슨 수를 썼는지 알아? 내가 먼저 미쳐버렸어. 전처가 정말 미치기 전에 먼저 미쳐버렸지. 매일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웃다 울다 했지. 전처 치마를 입고 거리에 뛰쳐나가 자동차 앞으로 달려들기도 하고. 내가 먼저 미치니까 그녀는 미치지 않더라고. 하루하루 냉정을 되찾더니 결국 이혼 수속에 합의했지.” 쑤퉁(蘇童)의 ‘이혼지침서’ 中에서

 

이혼율 30%, 세 쌍중 한 쌍은 이혼, 하루 300쌍 이혼. 통계 수치 속의 이혼,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쉬쉬하며 이혼 사실을 숨기는 것도 옛말이라고 한다. 서점에 가면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 ‘이혼 후에 잘 길러야 아이 인생이 달라진다’, ‘이혼의 조건’, ‘우리 방금 이혼했어요’, ‘여자들 이혼, 멋지고 당당하게’ 등 당당하게, 유리하게, 솔직하게 이혼하는 법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들도 많다.

 

‘흔해진 만큼 쉬워진 이혼’이라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혼은 한 개인에게 ‘생사를 건 결투’다. 중국 작가 쑤퉁이 들려주는 ‘이혼지침서’를 읽다보면 마치 전쟁 소설을 방불케 한다. 과장이라고? 아니, 전쟁보다 더한 전쟁이 바로 이혼이라는 게 이혼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여기 7년차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다. 법무 법인 한울의 조숙현(36) 변호사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혼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다. 통계가 감춰주지 못하는 당사자들만의 아픔이 베어있다.

 

“한 선배는 민사 중 이혼소송에서 가장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피해자의 고통을 정리하고 다시 재기하게 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라면서요. 저도 동의는 하지만 아직 그 경지까지 오르진 못했어요. 여전히 이혼소송은 변호사로서도 힘든 과정입니다.” 그가 보기에 이혼의 현실은 더 살벌해졌다. 오랫동안 여러 부부의 이혼을 지켜봤던 조 변호사. 그의 경험과 입을 빌려 ‘2007년 이혼의 맨 얼굴’을 짚어봤다.

 

▶‘사랑과 전쟁’은 환상= “4주 후에 뵙겠습니다.” KBS 드라마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판사로 분한 신구가 늘 하는 말이다. 드라마 속 이혼 조정 모습에 등장하는 부부는 담담하다. 울컥한다해도 눈물 흘리는 정도다. 조 변호사는 “드라마에서 모습은 절대 현실과 다른 이상향”이라고 잘라 말한다.

 

도장을 찍기전 냉각기를 가져보라는 이혼 숙려제. 이에 따라 판사 앞에 두 사람이 마주했을 땐 이미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치고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대의 치부를 바닥까지 긁어 공격한 이후다. “7년 동안 이혼소송을 맡아왔지만 ‘이 부부는 다시 결합할 수 있겠다’고 느낀 것은 1~2건에 불과했습니다. 변호사 비용까지 내면서 이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고민을 거듭했고 돌아가지 못할 선을 넘은 부부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혼 숙려제는 또 다른 고통일 뿐이다. 그는 협의 이혼 절차 개선과 지원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리인을 통해 서로의 이혼을 협의하고 직접 서로 공격하는 일을 줄여 이혼 과정에서 ‘2차 내상(內傷)’을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지적이다. 그는 이혼 숙려제보다 협의 이혼 제도 개선과 지원이 이혼 취소 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 방법이라 본다. 하지만 유승희 의원이 발의한 ‘협의이혼절차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2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사랑은 없고 전쟁만 있다= 이혼 소송에서 벌어지는 부부 간 싸움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A4 5장 분량의 내용을 상대편이 써서 내면 다시 10장으로 맞받아칩니다. 그에 맞서 또 15장을 내야죠. 30장, 50장 늘어납니다. 150장까지 써봤다는 동료 변호사 얘기도 들어봤어요.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내용 모두가 상대방의 내밀한 치부까지 드러내는 비판과 공격입니다”라고 조 변호사는 말한다.

 

서로에 대한 공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방을 최대한 흠집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회사원이라면 회사에 진정서를 보내고, 연예인이라면 기자회견을 열어 비방하는 것. 박철, 옥소리 부부가 이혼하면서 서로 기자회견 공방을 펼치는 것에 대해 이해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조 변호사는 “연예인인 만큼 그들이 가진 여건을 활용한 특수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혼의 세계(?)에선 흔히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혼 전쟁 속에서 아이들은 흡사 전쟁 고아와도 같다. 아이는 부모들의 싸움 속에서 희생된다. 조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아이를 법원에서 데려오지 말라’고 늘 당부한다. “어린 아이를 시켜 ‘아빠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아주 나쁜 사람이다’라고 증언을 시키는데 판사가 야단 좀 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숨 쉬었다. 양육권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하듯 서로 뺏는 일도 빈번하다. 이혼 소송에 매몰돼 자녀의 상처를 보지 못하는 부부가 많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혼 과정에서 가장 보호돼야 할 것은 누구보다 아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쉬운 이혼은 없다, 쉬운 결혼만 있을 뿐= 사람들은 이혼이 늘어난 것을 ‘쉽게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조 변호사는 “쉽게 이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면서 “쉽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져 덩달아 이혼이 늘어난 것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조 변호사는 오래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해왔지만 스스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고 되뇌일 만큼 힘들 때가 많다. 이혼은 그만큼 어렵다. 그는 이혼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 다시 이혼하는 것도 자주 봤다. 조건만 맞춰 결혼한 이가 한번 실패를 겪고도 또다시 쉬운 결혼을 선택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여러 조건을 이리저리 다 맞춰 보면서 가장 중요한 ‘사람 됨됨이’를 놓쳐 이혼이 이르는 부부가 너무 많다며 조 변호사는 안타까워했다.

 

특히 이주 여성과의 결혼에서 쉬운 결혼의 어려운 결말은 두드러진다. 조 변호사는 이주여성 법률상담을 해주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봤다. 남편이 정신지체인지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가 시어머니 폭행에 시달려 무작정 도망 나온 어린 베트남인 여성. 고등학생 나이에 한국에 시집왔다가 시아버지의 성희롱이 무서워 서울로 도망쳐온 캄보디아 사람. 결혼 자체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감정적 교류 없이 결혼한 이들 사이에 갈등이 붉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그는 “다시 시댁에 돌려보낼까 두려워 시댁이 어딘지도 얘기 못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사례가 많았다”며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몰라서 이혼 못하는 것은 옛말= “변호사 생활 초기엔 여성 의뢰인에게 이혼 소송 용어와 개념부터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젠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전업주부 등 대부분 여성 의뢰인이 절차나 이런 것을 다 공부하고 분석한 후에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대로 법원에 내도 될 만큼 완벽하게 서류를 써서 오는 분도 있지요.”

 

재산분할, 위자료의 개념 차이를 분명히 알고 오는 의뢰인도 절반을 넘는다. 이혼 소송을 의뢰하는 사람 대부분이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만큼 중간 이상의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 드라마 등을 통해 이혼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기회가 늘었다는 점도 한 이유다.

 

물론 여전히 그늘은 남아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재산을 남편 명의로 해놓는 분이 많습니다. 심지어 아내가 생계를 거의 책임진 경우에도 그랬어요. 가부장적 관습 하에 결혼 생활을 해온 10년 차 이상 부부가 이혼 의뢰인 중 많아 그런지 이 경향이 뚜렷합니다.” 최후의 선택으로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이후 경제적 곤란이 빠지는 여성이 적지 않은 배경이다.

 

조현숙ㆍ김선희 기자(newear@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이혼 숙려제란?= 법원의 이혼 허가 전 부부가 생각할 시간을 의무적으로 갖도록 한 제도. 가정폭력 등 긴급한 상황일 경우 제외된다. 현재 3주 정도며 정부는 이를 3개월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재산분할과 위자료의 차이는?= 재산분할은 이혼 시 재산을 부부가 나눠가지는 것으로 민법 상 ‘재산분할청구권’으로 명시돼 있다. 두 사람의 합의가 우선이다. 합의가 어려울 경우 가정법원이 여러 상황을 참작해 분할 액수, 방법을 정해준다. 위자료는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말한다. 이혼뿐 아니라 다른 정신적 손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청구가 가능하다. 이혼하며 위자료를 받으려면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상대방에 분명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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