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은행들은 소비자보호 전문가를 비롯한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자율조정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분쟁조정 케이스에 대한 보상 여부와 수준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신속한 자율조정을 위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겠다는 의지다.
반면, 피해자들은 자율조정협의체가 자칫 은행들의 방패막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도 여전히 거부하고 전액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은행들이 소비자보호 의지를 보인 점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자율배상'에 대해서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은행들, 외부 전문가 포함한 위원회 별도 구성
지난 3월 22일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하나은행(27일)에 이어 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이 28일 자율배상을 결정했고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29일 자율배상 의사를 밝혔다.
이 중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등 4개 은행은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자율조정협의체를 구성하고 금융당국 분쟁조정 가이드라인을 준용한 세부 조정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외부 전문가 명단은 공개되지 않을 예정이지만 소비자보호 내지 법률 전문가가 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하나은행이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5명 규모의 배상위원회를 설치해 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번에도 해당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콩 ELS가 공모 형태로 판매된 상품으로 사모 상품보다 가입자 수와 판매잔액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양한 유형의 분쟁을 신속하면서 법률 리스크 없이 처리해야하는 특성상 정확한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분쟁조정 신청 사례가 너무 많고 사적화해가 아닌 분쟁조정이라는 점에서 향후 소송전까지 대비해야 하는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적극 대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계은행인 SC제일은행은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판매잔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은행은 별도 협의체를 구성하기보다는 신탁부 주관으로 내부 및 외부 로펌 등의 법률 자문을 받고 분쟁조정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 피해자들 "자율조정협의체 공정성과 객관성 의심된다"
반면 은행들의 기민한 움직임과 달리 실제 배상 논의 과정에서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금감원의 분쟁조정안을 수용하지 못하고 '전액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은행 입장에서도 전액배상은 어렵다는 점이 확고한 상황이다.
지난 달 29일 KB국민은행 본에서 열린 집회에서 길성주 홍콩ELS피해자모임 위원장은 "금감원이 내놓은 배상안은 어떤 경우에도 은행 책임이 50%를 넘기지 않는 것으로 소비자에게 불만족스러운 방식"이라며 "당초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으로 약속했던 금감원이 은행 감싸기에 급급했기에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배상안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 자체를 거부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은행들이 금감원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 자체가 이들에게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이 소비자단체들은 은행들이 신속한 자율배상을 위해 만든 자율조정협의체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다. 손실이 발생한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외부위원 선임 없이 은행 측이 선정한 외부위원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은행들이 만든 자율조정협의체가 결국 은행 중심의 결정으로 인해 은행 측 자율조정안의 방패막이가 돼 결과적으로는 배상비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사실은 남의 손을 빌려 배상비율을 낮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또 하나의 다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업무상 배임 우려 때문에 외부 자문위원회를 둔다고 하지만 이 배상기준은 금감원 분쟁조정 심의를 거쳤기에 법상 사적화해와 동일하고 배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차라리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피해자들이 추천하는 추천 위원이 추가로 들어가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외부위원의 참여가 공정성 담보가 아닌 은행 측에 포획당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관망하면서도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수용하겠다는 결정이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소비자보호를 두텁게 하겠다는 부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자율조정협의체 구성은 우리가 따로 언급한 부분은 없다"면서 "자율배상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겠다는 은행 자체 프로세스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