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몰이나 호텔, 해외OTA 등에서 일부 가격만을 표시해 소비자를 유인하고 구매 과정에서 필수 비용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다크패턴 행위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순차공개 가격책정’을 금지해야 할 다크패턴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나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자상거래법 제21조의2와 시행규칙 제11조의4에 따르면 온라인몰 사업자나 통신판매업자는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는 데 필수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총금액’을 첫 화면에서 일부만 표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유인해서는 안 된다. 예외적인 경우에도 총금액에서 제외된 항목과 제외 사유를 첫 화면 또는 바로 연결된 화면에서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

5성급 호텔은 물론 글로벌 숙박 플랫폼 아고다, 부킹닷컴 및 네이버쇼핑, SSG닷컴, 지마켓, 11번가 등 국내 온라인몰에서도 여전히 ‘순차 공개 가격 책정’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순차 가격 공개가 가장 성행하는 분야는 글로벌 숙박 플랫폼이다. 최종 결제 단계에 가서야 세금과 수수료가 더해진 총금액을 알게 돼 소비자들이 가격을 오인할 우려가 크다.
‘아고다’에서 직접 호텔을 예약하는 과정을 보면 3박 예약을 선택했으나 첫 화면에는 1박당 가격인 16만1081원이 표시됐다. 결제 화면에서야 3박 가격과 세금과 수수료가 추가된 56만3459원이 청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화면에 표기된 금액보다 약 3.5배가량 높은 비용이 실제로 청구된 셈이다.

또 다른 숙박 플랫폼인 부킹닷컴에서도 일부 상품은 세금과 기타 요금을 포함한 총금액을 표시했지만 대다수 경우에는 ‘세금 및 기타 요금’이 별도로 청구된다는 안내를 작은 글씨로 병기하거나 결제 단계에서 예상보다 높은 금액이 청구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반면 호텔스닷컴과 트립닷컴은 첫 화면부터 세금·수수료가 포함된 총금액을 명확히 안내하고 있었다. 숙박 일수를 입력한 경우 전체 숙박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소비자 혼란이 적었다.
서울 소재 5성급 호텔 20곳을 조사한 결과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몬드리안서울·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등 3곳은 첫 화면에서 숙박 가격만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호텔신라, 조선호텔앤리조트 조선팰리스강남,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서울 등 17곳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 세금과 봉사료가 포함된 가격을 표시했다.
지난해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 실태조사에서 5성급 호텔 27곳 중 90% 이상이 세금 및 기타 수수료를 제외한 요금만을 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 표시 관행이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이다.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도 '순차공개 가격책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들 플랫폼에선 가구, 에어컨 등 설치비나 화물 배송비가 발생하는 상품군에서 이같은 문제가 계속 됐다.
상품 하단에는 지역별 배송비, 환경별 설치비 등이 상세히 안내돼 있으나 소비자가 가장 먼저 접하는 첫 화면에서는 여전히 '무료배송'만 기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SG닷컴 입점업체 가구 상품 상단에는 ‘무료배송’이라 표시하고 상품 상세페이지 하단에서는 ‘착불 배송’임을 안내했다.

지마켓의 한 판매자는 상품 배송비 안내란에는 ‘무료배송’으로 표기하면서 상품 상세설명 하단에는 ‘상품의 무게가 20kg를 초과하거나 길이가 1m 이상, 부피가 큰 경우 화물택배로 인계되며 이때 착불 택배비용이 부과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는 결제 직전까지 추가 배송비 발생 여부를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순차공개 가격책정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온라인몰 업계 관계자는 “판매자별로 배송 조건이 제각각인 구조상 실무적으로 모든 비용 정보를 첫 화면에 전부 표시하는 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입점 판매자들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위반 가능성을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고 신속히 시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순차공개 가격책정’시 처음엔 저렴한 금액처럼 보이지만 구매 과정에서 배송비·세금·수수료·설치비 등이 순차적으로 추가되면서 최종 결제 금액이 크게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소비자는 결제 단계에 이를 때까지 실제 부담해야 할 총비용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상품 간 가격 비교도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 공정위, 전자상거래법 개정...“이제는 첫 화면에 총금액 명시해야”
정부는 이 같은 ‘순차공개 가격책정’을 온라인상 소비자 기만 행위로 판단하고 올해 2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통해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개정된 전자상거래법 제21조의2는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업자 또는 통신판매업자가 상품 가격을 표시·광고할 때 ‘첫 화면’에서 소비자가 필수적으로 지급해야 할 총금액 중 일부만을 표시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총금액이란 상품 가격 외에도 배송비·설치비·세금 등 소비자가 필수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모든 비용을 포함하며 단순히 ‘가격’이 아닌 ‘소비자 부담 총액’으로 봐야 한다.
다만 총금액을 사전에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일부 가격만 표시할 수 있다. 시행규칙 제11조의4는 이 경우에도 ▲총금액에서 제외된 항목 ▲일률적 산정이 곤란한 사유 등을 첫 화면 또는 연결된 화면에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예외를 주장하려면 소비자가 첫 화면에서 연결된 화면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돼야 하며 일부 금액만 표시한 사유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공정위는 가격 표시와 관련해선 “순차적으로 비용이 추가되는 것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한 소비자가 최초에 인지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도록 해 원치 않는 가격에 상품을 거래하게끔 하거나 상품 간 가격 비교를 어렵게 해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 결정을 방해하는 문제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