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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맛집 탐방] 설렁탕 국물은 리필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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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맛집 탐방] 설렁탕 국물은 리필 안 되나(?)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02.08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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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황설렁탕

유치원 시절부터 자장면 대신 ‘설렁탕’을 고집했던 남자가 있다. 지금 아이들이야 피자, 햄버거, 돈가스 등 다양한 음식들이 판을 친다지만 과거, 30~40년 전만 해도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부식은 ‘자장면’ 아니었던가. 김시우씨는 자장면을 사준다는 어머니의 제안도 마다하고 설렁탕만 고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생에서 이 음식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살아오면서 설렁탕 파는 집이란 집은 모조리 섭렵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체인점부터 골목 구석에 위치한 작은 설렁탕집까지.

겉보기에는 오른 손에는 나이프를, 왼 손에는 포크를 들고 품위 있게 냅킨으로 입 주위를 훔칠 것 같건만 알고 보니 골수 마니아를 넘어서 ‘설렁탕’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항상 더 맛있는 설렁탕을 먹을 수 없을까 하는 바람이 결국 그를 설렁탕집 주인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뒤편에 위치한 ‘진황 설렁탕’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설렁탕을 꿈꾸는 그’를 말해주는 곳이다. 진황이란 이름은 眞(참진)에 黃(임금황)을 써서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가 나오길 바라는 진지한 소망과 설렁탕계의 ‘진정한 왕’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함께 담아 탄생했다.

손정규의 <조선요리(1940)>에 보면 설렁탕이란 우육(牛肉)의 잡육(雜肉), 내장 등 소의 모든 부분의 잔부를 뼈가 붙어 있는 그대로 하루쯤 곤다고 써있다.

하지만 진황설렁탕에서는 24시간이 진국을 내기에는 부족하다 여기는지 48시간 동안 4개의 가마에서 국물을 고아낸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국물을 만들어 포장해 나오는 대형 체인점과는 달리 일일이 주방장만의 기술과 손맛을 담아 국물을 푹 고아낸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주방장 채기석씨는 그가 힘들게 찾아낸 이곳 설렁탕의 숨은 공신이다. 설렁탕에 넘치는 열정을 지닌 그와 탄탄한 실력의 주방장이 만나 이곳 설렁탕이 태어났다.

이곳 설렁탕은 기름이 둥둥 뜨는 소위 ‘옛날식 설렁탕’과는 거리가 멀다. 우유 빛 뽀얀 국물이 보기에도 깊은 맛이 느껴지게 하는데 떠먹을수록 오묘한 무언가가 있다. 조미료로 치장한 기교를 잔뜩 부린 맛이 아니라 원색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맛이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구수하면서도 깊숙한 맛이 뱃속으로 진중하게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까다로운 여의도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여의도의 번화가와는 좀 떨어졌지만 국회의원들이나 연예인,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다.

하지만 처음 국물 맛을 보면 얼핏 싱겁게 느껴진다. 친구로 치면 말은 별로 없지만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편안해 왠지 모르게 계속 만나고 싶은 친구, 바로 그런 맛이다.

김치와 깍두기는 일주일 정도 숙성해 나오는데 이 맛이 또 기가 차다. 진한 설렁탕 국물을 넣어 만들었는데 적당히 신 맛이 나면서 아삭한 것이 심심한 국물 맛과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휘 저어 넣은 다음 밥 한 공기 말아 넣으면 …

사장 김시우씨는 설렁탕집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맛있는 설렁탕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거죠.” /김미선 기자 tjsdl33@economy21.co.kr

<한겨레 Economy 21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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