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0월 12일 서울 마천동에 위치한 편의점 CU 마천파크점 한 켠에 은행 점포가 문을 열었다. 하나은행이 편의점 내 은행 점포인 '편의점 특화점포'를 처음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보름 뒤 신한은행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GS25 편의점 내에 동일한 형태의 편의점 특화점포를 개설했다.
특히 메타버스에서 열린 출점식 당시 최문순 강원도지사, 진옥동 신한은행장(現 신한금융지주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등 지자체장과 양사 최고경영진이 직접 참석해 바짝 힘을 줬다.
신한은행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도 소비자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편의점 은행을 전국 단위로 확대해 나가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KB국민은행도 유통업계 공룡 이마트와 손잡고 디지털 제휴 점포를 선보이면서 은행 간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iM뱅크(당시 대구은행), 경남은행이 시범 점포를 열며 동참했다.

심지어 은행들은 '적과의 동침'도 서슴치 않았다. 경쟁사와 같은 장소에서 영업점을 같이 운영하는 '은행 공동점포'가 그것이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지난 2022년 4월 은행권 최초의 은행 공동점포를 열었고 뒤이어 KB국민은행이 신한은행, 부산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3곳과 제휴를 맺고 공동점포를 열며 가장 적극적이었다.
은행들은 고령층 고객들의 편의성을 강조한 '시니어 특화점포'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점포 통·폐합 조치로 영업점이 사라지면서 고령층 고객 중심으로 불편을 호소하자 은행들은 시니어 특화점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유형의 점포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신한은행은 '고객중심영업점', 하나은행은 '시니어 특화점포', 우리은행은 '시니어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선보였고 KB국민은행은 '시니어라운지'라는 이동점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은행들이 점포 통·폐합의 보완책으로 다양한 형태의 특화점포를 선보였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확장하지 않고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실패 수순을 밟고 있는 셈이다.
편의점 특화점포는 총 6개 은행이 13곳에 문을 연 게 전부다. 지난 2023년 6월을 끝으로 2년 째 신규 출점이 전무한 상황이다. 은행 공동점포 역시 6개 은행이 5곳을 선보였지만 이 역시 2023년 8월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시니어 특화점포도 각 은행들이 출범식에 금융지주 회장들이 총출동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은행 '효심 영업점'의 경우 지난 2023년 3월 1호점 개점식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하며 힘을 줬지만 2년 넘게 추가 출점 소식이 없다.
가장 활발하다고 평가받는 신한은행 고객중심영업점은 지난 2023년 1월 서울 역촌동 지점을 끝으로 신규 출점이 없고 그나마 하나은행 '시니어 특화점포'가 지난해 2월 출범한 것이 최근이다.

그 사이 은행들은 점포 통·폐합 작업을 수 년째 지속하며 소비자들의 점포 접근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이던 2019년 말 기준 국내 은행 점포 수는 6714곳에 달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는 5645곳으로 5년 만에 1069곳 순감소했다. 지난해는 110곳 순감소하면서 감소폭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7일과 18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은 서울 시내 주요 편의점 특화점포를 직접 찾아가 점포 운영 상황을 점검한 결과 3년 차를 맞이한 편의점 특화점포는 외형상으로는 출시 초기와 다르지 않게 정상 운영 중이었다. 지점별로 스마트 기기가 고장나거나 부실 운영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없었다.
CU마천파크X하나은행점은 체크카드 발급, 통장업무, 계좌 개설부터 상담원과의 화상통화까지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기기 청결 상태도 좋아 방문하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낄 부분이 없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일부 특화점포는 이용 빈도도 높았다. 특히 신한은행 GS더프레시 광진화양점은 번화가에 위치했고 편의점보다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도 많았다.
다만 은행 점포가 단독 입지한 것이 아닌 유통사와의 제휴 형태다보니 온전한 금융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한계도 명확했다.

신한은행 GS더프레시 광진화양점의 경우 수퍼마켓 특성상 내부가 소란스러워서인지 화상통화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고객들도 대부분 입출금 업무처럼 간단한 기능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KB디지털뱅크 NB강남터미널점 역시 노브랜드 지점 내부가 아닌 입구에 특화점포가 입점하다보니 은행 점포 특유의 차분한 환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은행 점포 입점으로 인한 모객 효과로 매출 증대를 기대한 편의점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다. 고객 입점은 다소 늘었지만 편의점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공통된 입장이다.
현장에서 만난 편의점 직원은 “많지는 않아도 손님들이 지속 방문하고 있다. 기기 관리를 은행에서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도 없다”면서도 “편의점도 같이 이용하는 손님이 있긴 하나 매출 증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쟁 은행과의 '적과의 동침'으로 화제를 모았던 은행 공동점포도 점포 자체 운영은 출시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은행 공동점포는 입·출금 및 각종 제신고 업무 등 은행 기본 업무가 수행이 가능하고 대출상담, 자산관리 등 고도화 된 뱅킹 서비스는 불가능해 서비스 제약이 명확했다.
대표적으로 은행 공동점포에서는 대출상담이나 자산관리 등 주요 내점 업무가 불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으레 은행 점포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뱅킹 서비스가 어렵기 때문에 공동 점포로 발길을 쉽게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은행 공동점포 역시 편의점 특화점포와 마찬가지로 입지 선정에 있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상충되는 문제가 동일하게 지적된다. 은행마다 원하는 입지가 있는데 이견이 좁히지 않아 확장성이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반응이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동점포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으나 결국 은행 간의 이해관계 문제가 크다. 단독 점포 개설 대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 진척이 안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