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 1단계 법안이 시행된 지 3일 만이었던 지난해 7월 23일,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 어베일(AVAIL) 코인이 상장됐다. 이 코인의 시초가는 236원이었지만 18분 만에 3500원으로 1383% 폭등하는 '상장빔'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후 코인 가격은 급락했고 1일 오전 기준 어베일 코인의 가격은 32원 내외로 상장 직후 기록한 신고가와 비교하면 1%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상장 직후 단기간 코인 가격이 급등락하며 시세조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현행 법규상 가상자산의 상장과 폐지 모두 거래소의 자율규제 영역이어서 당시 금융당국 차원의 실시간 감시는 없었다.
◆ 상장폐지 앞둔 가상자산이 가격 5배 급등... 변동성에 속수무책
가격이 급등락하는 가상자산에 대해 현행법상 거래소나 금융당국 차원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단이 없다는 점도 현재 가상자산법의 사각지대로 지적된다.
상장폐지를 앞둔 가상자산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는 이른 바 '상폐빔'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상장빔을 통제할 방안이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업비트에 상장됐던 스팀달러(SBD)의 경우 작년 말 업비트로부터 거래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받은 뒤 가격이 3000원 대에서 1만7400원으로 5배 이상 폭등했지만 거래종료일인 지난 2월 12일 600원까지 내려왔다.

상장폐지를 앞두고 특정 세력이나 단기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린 상폐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비정상적인 가격 급등락에도 거래소와 당국 차원에서의 안전장치는 없었다.
상폐빔 현상은 최근 상장폐지를 앞둔 가상자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지난 3월 빗썸에서 상장폐지가 확정된 밸러토큰( VALOR)의 경우 하루 만에 가격이 43% 급등했고 지난 4월 업비트와 빗썸에서 상장폐지가 결정된 '룸네트워크(LOOM)' 역시 상장폐지 결정 이후 하루 만에 가격이 25%나 상승했다.
윤민섭 디지털소비자연구원 이사는 “스팀달러는 달러의 가격에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2017년 가상화폐 초기에 상장됐지만 줄곧 가격 급등락이 반복되는 문제가 노출됐다”면서 “스테이블하게 되지 않는 순간 상폐가 바로 돼야 했는데 거래소에서 이를 하지 않아 피해를 본 소비자가 많았고 결국 규제가 미흡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가상자산 종목 정보가 담긴 백서 등 공시체계를 규율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1단계 법안에서 백서의 법적 성격과 형식, 내용 등을 규율하는 일반 법령이나 지침이 없고 이로 인해 사업자가 허위 백서를 기재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7월 업비트에 상장된 가상자산 ‘고머니2'는 이듬해 3월 북미 최대 펀드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공시를 한 적 있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허위공시 의혹이 제기됐고 업비트 측도 발행사에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명부족으로 결국 업비트는 고머니2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뒤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또한 한글백서 제공 등 투자자 정보 제공도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업비트의 경우 상장된 가상자산의 절반 가량을 한글백서로 제공 중이고 빗썸 또한 일부 가상자산에 대해서만 한글백서가 제공되고 있다. 주요 거래소들은 모범사례, 주요사업보고서 등은 모두 한글로 제공하고 있고 순차적으로 한글백서로 완성한다는 입장이다.
◆ 투자자 피해 입어도 민원 제기할 곳 조차 없어... 감독기관 부재 탓
가상자산 거래 과정에서 수 많은 피해들이 양산되고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피해구제 절차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1단계 법안에서는 가상자산을 콜드월렛에 80% 이상 보관하고 가상자산거래소에 보험 가입 의무가 주어지는 등 투자자가 보유한 가상자산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갖춰졌다. 그러나 피해사고 발생시 소비자 구제 절차는 명시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지난 달 16일 가상자산거래소 코빗에서는 사전고지 없이 12시간 가량 서버 긴급 점검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래소 측은 금전적 피해를 본 투자자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가격 변동성이 높은 가상자산 특성상 보유자산을 제 때 매도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금전적 피해를 거래소 측에 호소하는 상황이다.
비슷한 거래구조를 가진 증권사의 경우 시스템 오류로 온라인 거래가 불가능할 경우 전화주문 등 대체수단으로 거래 기록을 남기면 추후 보상 받을 수 있는 통일된 법적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발생한 해킹 및 전산장애는 법적 장치가 없다.
그러다보니 거래소마다 전산장애에 따른 피해 접수 기간과 보상 예외 조항 등은 개별적으로 있지만 기준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피해 접수 기한은 업비트와 코인원, 코빗은 사고 발생 이후 7일이지만 빗썸은 10일 이내, 고팍스는 별도 제한이 없다. 피해보상 예외 기준 역시 업비트와 빗썸은 '알림지연' 또는 '입출금 지연'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나머지 3곳 거래소는 예외사유를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사전 안내 없이 점검이 시작됐고 종료 시점도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손해를 볼 수 있는 부문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민법적 측면에서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계약 채무 불이행에 해당한다”면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입법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소비자가 보상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도 문제제기 할 수 있는 법적 기관도 부재한 상태다. 1단계 법안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민원·분쟁조정 기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 문제의 경우 금융감독원 또는 금융회사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금감원 분쟁조정 절차를 통해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중재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행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가상자산 관련 분쟁조정을 취급하지 않고 가상자산을 담당하는 별도의 분쟁조정기구나 소비자보호기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1단계 법안의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가상자산사업자 위주로 되어 있다는 점과 대체불가토큰(NFT)이나 메타버스 등 비중앙화 영역 또는 신종 가상자산 유형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1단계 법안에서 빠져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민섭 이사는 “1단계 법안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업종 분류도 없고 진입 규제는 특정금융경제법에 따른다고 하지만 사실상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손을 놓았다”면서 “2단계 법안은 드러난 문제점을 전면 보강해서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