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에는 장사 없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은 확실히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는 천하의 진리인 모양이었다.
광평은 약간의 취기 어린 눈으로 방 안을 휘둘러봤다. 한마디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테이블 위의 술과 안주가 개판이라는 말과 통할 낭자(狼藉)라는 단어를 완전 무색케 했다. 그는 그 순간 중국 문학 전공자답게 송대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남긴 천하의 명문 전적벽부(前赤壁賦)의 마지막 한 구절을 가만히 떠올렸다.
효핵기진(肴核旣盡) 배반낭자(杯盤狼藉), 즉 "과일은 모두 먹어치웠고 술잔과 안주 그릇은 이곳저곳에 구르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압권인 그 모습이 이랬을까 싶었던 것이다.
광평은 여자들에게도 눈길을 보냈다. 하나 예외 없이 취기 어린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은 듯 했다.
광평은 옆의 여자도 힐끔 훑어봤다. 상당히 취해 있는 것이 몹시 위태위태해보였다. 그는 난감했다. 받아야 할 화대도 화대지만 몸도 못 가눌 여자를 그대로 두고 간다는 것이 왠지 찜찜했다.
더구나 그의 여자에 대한 감정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꼼짝 없이 골프주를 만들어야 할 위기의 순간을 넘기게 해준 것도 과분한 배려였으나 갈 데까지 가지 않도록 지저분하게 나오지 않은 것이 그로서는 너무나 고마웠던 것이다.
광평의 고민은 하지만 후배 원징이 방에 들어와 그에게 귀엣말을 하면서 바로 끝났다. 원징이 그에게 전한 내용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바로 옆의 궈타이호텔에서 개별적으로 즐기는 본격적인 2차가 예정돼 있으니 반드시 여자를 모시고 가라는 당부였다.
빌어먹을! 광평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여자와 몸을 섞는 횡액을 당하는 것은 이제 점점 피하기 어려운 운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자는 술이 빨리 취하는 대신 깨는 것도 빠른 것 같았다. 호텔에 들어올 때는 다른 일행들보다 몸이 심하게 흐느적거렸으나 객실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광평은 솔직히 그 점이 더 꺼림직했다. 여자가 호스트 바에서는 아무리 자신에게 많은 배려를 했다 하더라도 단 둘이 있을 때는 확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불행히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여자가 침대에 힘 없이 몸을 눕히는가 싶더니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있었다. 곧바로 50세 전후의 여자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균형 잡히고 깨끗한 피부의 몸매가 광평의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굳이 흠을 잡자면 몸 전체가 아무래도 탄력이 좀 없어 보인다는 정도였다. 광평은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미스터 송은 이런 일이 진짜 처음인 모양이네. 계속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대니 말이야. 그래 가지고서야 나중에 어디 집사람에게 제대로 봉사라도 하겠어. 총각 때에 열심히 실력을 갈고 딱아야지"
여자는 넓은 객실에 둘만 있게 되자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광평을 어린애 대하듯 하면서 말에서부터 걸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어려서부터 숫기가 좀 없기는 했습니다. 총각 딱지도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을 때 베이터우에서 사창가 여자에게 겨우 뗐는걸요. 결혼을 아직까지 못한 것도 다 이유가 있죠"
광평이 게면쩍게 웃음을 흘렸다. 몇 년전인가 타이베이 교외인 베이터우(北投)의 한 온천에서 친구들이 억지로 넣어준 사창가 여자에게 동정을 바친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때보다는 지금이 분위기가 더 좋다고 느꼈으나 여자와 흔쾌히 몸을 섞을 엄두는 솔직히 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빨리 이리로 좀 와 봐, 미스터 송! 내가 한수 제대로 가르쳐 줄테니까"
여자는 점점 대담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광평에게 섹시한 포즈를 은근하게 취하는 것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코 먹은 목소리까지 과감히 뱉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