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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 이 미친넘의 사랑…(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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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장편소설> 이 미친넘의 사랑…(9)
  • 홍순도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01.25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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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되겠지? 여기에서 벌어먹고 살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우니까"

"그래도 10여년 가까운 세월을 공부에만 몰두했는데 놀기야 하겠어? 자네 실력은 우리 교수님들도 보증할 수준이잖아"

"그렇지 않아. 10여년전만 해도 석사 학위만 받아가지고 돌아가도 대학에서 자리를 구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만 지금은 달라. 막 말로 길거리에 차이는 게 박사야.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마치 발정 난 암캐처럼 박사를 찾아 헤매던 대학들이 언제 그랬냐는 식의 고자세로 변해 버렸어. 도리어 박사들이 칼자루를 쥔 대학에 고양의 앞의 쥐 꼴로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야. 심지어 자리를 얻으려고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놓는 골빈 놈들도 없지 않대. 소위 힘깨나 있는 놈들이 마치 허가 낸 도둑놈처럼 축재를 해 대서 어디 하나 썩지 않은 구석이 없는 나라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러니 나처럼 빽 없고 돈 없는 무지랭이들은 명함도 못 내밀지. 개새끼들, 잘들 해 보라고 그래. 요샌 정말 󰡐민나 도로보데스󰡑라는 일본말이 실감난다고. 모두가 도독놈들이야!"

"괜한 얘기를 물었군. 한국의 사정이 그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어. 하긴 타이완 사회도 썩어서 냄새가 진동한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천민 자본주의의 나라, 바로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이 곳이지. 최근에 당한 더러운 꼴을 생각하면 내가 왜 죽어라 공부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니까. 빌어먹을!"

문호와 광평의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의례적 대화는 엉뚱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광평이 문호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중에는 광평의 타이완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문호는 평소 과묵하고 조용한 광평이 갑자기 과격하다 싶을 만큼 심한 말을 내뱉자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며칠 못 보는 사이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그치듯 광평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 있었어, 자네? 그렇게 기분 나쁜 표정과 말은 처음인데. 자네 답지 않다고. 무슨 일이 있었지?"

"……"

"있었어, 없었어?"

"허, 이거야 원"

"빨리 말해 봐, 이 사람아!"

"음, 좋아. 나를 한심하다고 비웃지나 말라구"

광평은 침묵과 어색한 말로 게면쩍은 분위기를 피해가려다 계속되는 문호의 득달에 드디어 뭔가를 고백하려는 움직임을 언뜻 비췄다. 뭔지는 몰라도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것이 확실한듯 했다. 문호는 가늘게 떨면서 뭔가 얘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그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형, 이번 딱 한번이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갑시다. 얼굴 풀어요. 눈 한번 질끔 감는 조건에 2만위안(元)이나 주는데 그게 어딥니까?"

택시 앞좌석의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는 계속 눈치를 살피면서 광평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광평의 고향 화롄(花蓮)의 동네 후배로 수년여 전부터 시먼딩 어느 야바(鴨吧)의 야디에(鴨,爹), 즉 호스트 바의 남자 마담으로 일한다는 소문이 타이베이 밤세계에 파다한 장원징(張元澄)이라는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야디에답게 꽃미남 저리가라 할 정도의 멀끔한 얼굴의 하얀 피부가 돈많은 여자들 깨나 울렸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기야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나는 하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어? 어떻게 나처럼 늙은 총각을 간절히 원하는 아주머니들이 다 있는지 당최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야"

택시 뒷좌석의 광평이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채 앞의 원징에게 물었다. 그의 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미뤄볼때 그는 아마도 돈이 필요해 후배 원징이 일하는 야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저도 그게 이상했다구요. 젊고 힘이 넘치는 10대 후반의 잘 생긴 진짜 프로 선수들이 우리 바에만 해도 널려 있는데 굳이 그 아주머니들이 30대의 공부하는 늙다리들을 구해달라니 이상할 수 밖에요. 그것도 몇 개월전부터 줄기차게. 어쨌든 정 궁금한게 있으면 술자리에서 물어보도록 하세요"

원징이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로서도 올해 초부터 몇 번 들락거리다가 단골이 된 40대 후반의 만만치 않은 일단의 귀부인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30대 중반 전후의 지적인 남자들을 좀 구해올 수 없냐고 계속 은근하게 물어온 것이 영 이해가 되지 않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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