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캠페인
[고객센터? 불통센터! ⑥] 상담도 자식에게 부탁...디지털 장벽에 갇힌 고령층·장애인들 '막막'
상태바
[고객센터? 불통센터! ⑥] 상담도 자식에게 부탁...디지털 장벽에 갇힌 고령층·장애인들 '막막'
  • 정은영 기자 jey@csnews.co.kr
  • 승인 2025.09.18 0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때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던 고객센터가 챗봇과 앱으로 대체되고 있다. 상담원 연결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반복되는 절차와 기계적인 답변에 소비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디지털 이용이 서툰 고령층, 장애인은 사실상 상담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객센터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과제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 대전에 사는 70대 조 모(남)씨는 통신비가 평소보다 많이 나와 통신사 고객센터에 문의하고자 연락했다가 분통이 터졌다. 콜센터에 전화해 상담원과 연결됐다고 생각했으나 사람이 아닌 AI였다. AI 상담원 안내대로 몇 단계를 거쳐 원하는 메뉴 번호를 입력했지만 따라가기 어려워 중간에 끊어버렸다. 이 씨는 "상담원과 연결하려고 해도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 경북에 사는 60대 이 모(여)씨는 농사지은 채소를 자녀에게 보내려고 택배사에 택배 접수하려 했으나 결국 이웃집 청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고객센터에 연락하자 보이는 ARS로 연결됐는데 첫 화면에 보이는 수많은 문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 여러 항목을 누르다보니 다시 처음 메뉴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 씨는 "화면에 뭐가 많이 써 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더라"며 "젊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모바일, AI 기반 고객센터로 전환을 가속하며 고령자,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소외시키고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모바일 활용에 서툰 고령자들에게는 고객센터 연결 자체가 장벽이 되고 있다.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키오스크가 도입될 당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이 소외돼 사회 문제로까지 번진 것처럼, 고객센터의 디지털 전환이 유사한 소외 현상을 반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고객센터에서 고령자들이 겪는 불편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콜센터에 전화해도 강제적으로 보이는 ARS나 음성ARS로 전환되는데 대응이 어렵다 ▷ 모바일 고객센터나 ARS에서 상담사 연결이 직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모바일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작은 아이콘을 클릭하기 어렵고 복잡한 메뉴를 다단계로 거쳐야 해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보이는 ARS 접속 후 일반 예매 메뉴를 선택하면 챗봇 답변으로 연결된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대한항공 보이는 ARS 접속 후 일반 예매 메뉴를 선택하면 챗봇 답변으로 연결된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18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택배, 카드사, 항공업체, 통신사 등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에서 고령자 접근이 어려웠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삼성카드 등은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강제적으로 '보이는 ARS'로 전환된다. 보이는 ARS로 전환되면 와이파이 환경이 아닌 경우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된다. 상담하려다가 데이터 요금 폭탄까지 맞을 수 있는 셈이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택배사의 경우 ①통화가 연결된 후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로 '보이는 ARS' 접속 링크가 전송되며 ②통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링크를 클릭해야 연결됐다.

이들 업체는 모바일 고객센터 메인 화면에 나열된 항목에서 바로 상담원과 연결되는 메뉴가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콜센터로 연락하면 국내선, 국제선 선택 후 '보이는 ARS'와 '음성 ARS' 중 고를 수 있다. 보이는 ARS 연결 후 '이용을 원하지 않으면 화면 하단의 음성ARS를 눌러주십시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음성ARS' 메뉴는 왼쪽 하단에 위치해 있으나 익숙치 않을 경우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챗봇'만 있을 뿐 상담원과 전화 연결할 수 있는 메뉴가 없다. 한진도 메인 화면에서 상담사와 바로 전화 연결해주는 메뉴가 없다. 상담원과 연결하려면 '개인택배', '반품택배' 등 항목을 우선 클릭해야 한다. 일례로 개인택배 예약 접수를 하고 싶을 경우 '개인택배 탭을 누른 뒤→예약 접수 탭을 누르면→상담원과 연결'되는 구조다.
 

▲한진택배 '보이는 ARS' 기본 화면에 상담원과 직접 연결하는 탭이 없다.
▲한진택배 '보이는 ARS' 기본 화면에 상담원과 직접 연결하는 탭이 없다.
삼성카드의 경우 화면에서 상담원 연결 아이콘을 클릭해도 다단계를 거쳐야 가능했다.

화면에서 상담원 연결 클릭->상담직원 연결-회원유형 선택->상담직원연결->문의내용 선택->본인확인->비밀번호 입력을 거치는 등 총 7단계를 지나야 상담원 연결이 가능하다.

음성ARS를 선택해도 상담원과 연결까지 다단계인 건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의 경우 ①상담사 연결을 선택한 뒤 ②문의 유형 선택 ③생년월일 등 정보 입력 ④입력 정보 확인 ⑤본인 확인 등 총 다섯단계를 거쳐야 했다. 

또한 일부 업체는 보이는 ARS 화면에서 통화 화면으로 돌아가 원하는 메뉴 등을 번호로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경우가 있어 고령자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 전화도, 앱도 막막...디지털 전환 속 장애인 고객 외면

주요 은행 등을 제외하면, 택배, 유통, 항공 등 소비 생활과 밀접한 업종 대부분 장애인을 위한 전용 고객센터나 맞춤 상담 서비스가 거의 마련돼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경우 불편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대부분 고객센터가 ‘보이는 ARS’로 자동 전환되면서 화면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상담이나 채팅 상담, 수어 영상상담 등이 도입된 사례도 흔치 않았다.

고령자나 장애인 등에게 디지털 고객센터 이용이 쉽지 않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고령의 부모가 자식의 도움 없이는 상담조차 못하는 실정' '장애인 고객센터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상담원 연결 절차를 단순화'하거나 '장애인 접근성을 높일 보완책' 등 최소한의 장치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은영 기자]


주요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