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북 익산에 사는 권 모(남)씨는 지난 17일 대형 온라인몰 직매입 상품으로 공구를 주문했다. 그러나 배송된 상자에는 주문한 물건 없이 텅 빈 상태였다. 권 씨는 업체에 교환 요청했으나 아직 아무런 답도 받지 못한 상태다. 권 씨는 "믿었던 온라인몰에서 빈 상자가 배송된 상황이 너무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왕 모(남)씨는 지난 3월 장난감 전문 쇼핑몰에서 상품을 주문했는데 빈 박스만 배송돼 당황했다. 상자 안에는 완충재 비닐뿐이었다. 고객센터에도 십여차례 연락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왕 씨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이런 회사는 존재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 서울시에 사는 김 모(여)씨는 홈쇼핑몰에서 유산균을 구매했는데, 빈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뿐 제품은 온데 간데 없다고 기막혀했다. 홈쇼핑 측에 문의했으나 “판매업체에 확인해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김 씨는 “계속 항의하자 환불해주기로 해놓고 다시 말을 바꿨다. 환불이 가능한지, 언제쯤 될지 수차례 물어도 ‘알 수 없다’는 대답이 전부다”라며 답답해했다.

# 강원도 강릉에 사는 안 모(남)씨는 패션 플랫폼에서 캠핑에 필요한 용품을 구매했다. 빈 박스로 도착해 고객센터에 문의했고 재발송해 준다기에 믿고 기다렸으나 한 달째 소식이 없는 상태다. 안 씨는 "빈 박스를 보내놓고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며 빠른 처리를 촉구했다.
# 경기도 하남에 사는 신 모(여)씨는 중국 직구 온라인몰에서 신발을 주문했으나 빈 봉지만 왔다며 기막혀했다. 신발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봉지가 와 뜯어보니 안이 비어 있었다고. 신 씨는 업체에 환불해달라고 항의했으나 증거가 없다며 거절했다고. 신 씨는 "신발을 샀는데 빈 봉지만 배송됐다.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온라인몰에서 상품을 주문했으나 '빈 박스'만 배송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책임 소재를 두고 소비자와 업체 간 분쟁을 빚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는 배송 과정에서의 도난이나 내부 직원의 고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신속한 환불, 재배송을 요구하지만 수용되는 경우가 적어 불만을 터트린다. 업체들은 증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면서 다툼이 잦다.
28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온라인몰에서 제품을 주문한 후 박스만 덩그러니 왔다는 민원이 적지 않다. 커뮤니티 등에서도 빈 박스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게 제기된다.
이전에는 개인 간 중고 거래 위주로 다발했다면 최근에는 대형 온라인몰에서도 이같은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쿠팡, 네이버쇼핑, 무신사, 지마켓, 11번가, 바이즐, 알리, 테무 등 이커머스나 패션·화장품업체 공식몰 등 온라인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대부분 업체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어떤 단계에서 누락이 발생했는지 규명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그 사이 소비자는 환불을 받지도 못한 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빈 박스가 배송돼 업체에 문의했으나 되려 심문당하는 등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민원도 다반사다.

온라인 유통 구조는 상품 주문→물류센터 출고→택배사 이동→최종 배송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특히 대형 온라인몰의 경우 자사 직매입 상품과 입점 판매자 상품의 판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포장 주체도 다르다.
소비자는 단일 플랫폼에서 상품을 주문하지만 상품은 각기 다른 경로를 거쳐 배송된다. 이 과정에서 상품이 누락되거나 도난, 시스템 오류 등이 생기면 ‘빈 박스’ 상태로 배송될 가능성이 발생한다.
온라인몰 업체들은 일반적으로 물류센터 CCTV, 택배사 인수 과정 영상 등을 근거로 상품이 정상적으로 포장 및 출고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체 물류 시스템을 갖춘 직매입 상품의 경우 여러 과정의 검수 절차를 거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배송 도중 제품이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CCTV 영상만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영상 화질이 선명하지 않거나 특정 포장 박스 안에 어떤 제품이 들어갔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류센터에서 박스에 제품을 넣는 장면이 있더라도 본인이 주문한 상품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 일방적인 자료로 결론을 내리는 태도는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온라인몰 입점 판매자 상품에서 빈 박스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더 복잡하다.
이 경우 온라인몰은 ‘중개자’ 역할에 머물러 직접 환불이나 보상을 결정하기 어려워 판매자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절차가 지연되거나 판매자가 책임을 부인할 경우 사실상 소비자 구제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쿠팡, G마켓, 11번가, 옥션, SSG닷컴, 롯데온 등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은 상품 포장 및 배송 과정에서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절차를 운영 중이며 피해 접수 시 자체 규정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픈마켓 업계 관계자는 “빈 박스 배송 문의가 접수되면 고객과 입점 판매자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사진 등 입증자료를 요청해 내부 규정에 따라 환불이나 재배송 등을 한다”며 “포장 및 발송이 정상적으로 이뤄졌음에도 중간 유통 단계에서 상품이 분실되거나 문 앞 배송 이후 도난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어 확인 절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직매입 상품은 일부 소비자가 고의로 빈 박스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블랙컨슈머’ 사례도 간혹 있기 때문에 특히 고가의 직매입 상품은 포장 작업 공간에 CCTV를 철저히 설치해 검수 과정을 강화하고 있고 CCTV 외에도 입·출고 및 수거 내역을 별도로 관리하고”고 덧붙였다.
또 다른 오픈마켓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고객에게 빈 상자가 배송된 사진 증빙자료 등을 확인하면 환불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상품 종류가 다양하고 상품군에 따라 출고 과정이나 적용되는 규정도 상이해 제품마다 내부 규정에 따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빈 박스 배송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사고인 만큼 판매자 중심의 일관된 대응 체계와 투명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 과정이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 결국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게 되는 구조”라며 “빈 박스 배송 문제도 제품이 물류센터에서 택배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포장 담당자나 배송기사 등 여러 주체가 관여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급사나 판매사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며 “제품 출고 이후 각 단계에서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하며 특히 판매를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판매 업체가 주체적으로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