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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웰메이드 한국창작발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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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웰메이드 한국창작발레의 탄생!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6.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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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산 고급 접시에 한국 김치를 담아먹어도 제 맛이 날까?

비단 김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용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발레하면 왜 <백조의 호수>만 떠오르는지, 서양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것”은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서양의 춤 ‘발레’에 한국의 고전소설을 담을 수는 없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소해줄 명작들의 출현이 시작되고 있다. 한국고전소설 속 춘향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춘향>이 6월 19일~20일 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2007년 5월 전막 초연되며 또 하나의 웰메이드 한국창작발레의 탄생을 예고한바 있는 <발레 춘향>은 보다 발레적인 표현과 테크닉으로 중무장하여 금의환향했다. 첫날 공연에서 춘향과 몽룡으로 분한 수석무용수 황혜민과 엄재용은 다시 한 번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그야말로 절절한 사랑이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무와 구성에 있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니만큼 한국창작발레로서의 매력에 주목해본다.

한국창작발레<춘향>의 매력 하나. 사계절의 전환

1막에 등장하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아름다운 사계절과 함께 무대 위에 올려졌다. 그들의 첫 만남은 꽃잎이 떨어지던 봄날 단오의 그네 뛰던 시절에 이루어진다. 방자와 향단의 주선으로 짧은 여름밤 오작교에서 사랑을 확인한 후 몽룡은 마음을 담아 부채에 글을 쓰고 춘향은 치마폭에 이를 받아든다. 낙엽이 사뿐히 떨어지던 가을날 그들의 사랑은 곡식이 익어가듯 무르익어갔지만 차가운 겨울밤에는 된서리를 맞듯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이처럼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순환을 춘향과 몽룡의 사랑과 결부시켜 보여주었고 무대 디자인에서도 한국적 이미지와 전통적인 공간을 보여주었다. 정자에 앉아 다듬이질을 하는 여인들,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들은 작은 부분에서까지 우리의 색채를 보여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무대의 색감은 화사롭기까지 하다. 간혹 이 많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무대의 전환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좋은 경관을 발견한 듯 관객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한국창작발레<춘향>의 매력 둘. 한국적 정서의 표현

춘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낯익다. 변학도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정인과의 사랑을 지키고자 절개를 굽히지 않았던 춘향의 사랑은 <백조의 호수>속 오데트의 사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가슴에 와 닿는다. 이는 한국적 정서가 자아내는 모종의 효과이다. 이 때문에 지켜보는 관객과 춤을 추는 무용수간의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춘향이 몽룡을 처음 만나던 날 수줍게 발끝을 움직일 때나 첫날밤을 지새기위해 한 자락씩 옷을 내려놓을 때에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변학도의 모진 고문을 상징하듯 여러 명의 포졸들이 춘향의 몸에 긴 천을 감아 포박하거나 공중으로 던져 올려 고난이도의 리프팅을 연속적으로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감정의 표현이 더욱 격해진다. 춘향의 발끝이 지면에 놓일 새 없이 펼쳐지는 강도 높은 테크닉은 괴로움을 표하는 황혜민의 표정과 몸짓으로 더욱 절절히 다가왔다. 1막에 등장하는 첫날밤 2인무 외에도 마지막 해후에서 펼쳐지는 2인무에서는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재회한 연인의 감정이 잘 표현되었다. 일반적으로 창작발레는 고전발레에 비해 테크닉적 요소가 부족할 것이란 인식을 지워버리려는 듯 유난히 기교적인 동작이 많이 선보였다. 특히 몽룡 역의 엄재용은 춘향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고 회전시키는 등 고난이도의 리프트 동작을 깔끔하게 소화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국창작발레<춘향>의 매력 셋. 한국적 캐릭터의 등장

<발레 춘향>에는 유독 등장인물이 많다. 춘향의 낭군인 몽룡, 사랑의 메신저인 방자와 향단을 비롯하여 악인 변학도까지 중심인물 외에도 월매, 이판서, 왕, 기생들과 관료들, 마을사람들까지 많은 인물들이 쉬지 않고 등장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주인공인 춘향과 몽룡, 변학도 외의 인물들의 캐릭터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고 묻혀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장점이 있다. <발레 춘향>의 등장인물들은 <돈키호테>속 선술집에 모인 사람들도 아니고 <지젤>속 포도마을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전라도 남원의 기생과 관료, 마을사람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완벽히 클래식한 발레라기보다 한국춤의 손사위와 현대춤의 테크닉을 교묘히 닮아있는 새로운 발레이다. 2막 1장에 등장하는 과거시험장면에서는 화선지에 성큼성큼 답을 적어나가는 몽룡의 독무 ‘일필휘지’가 늠름하게 추어졌다. 조명으로 직사각형의 화선지를 만들고 커다란 붓으로 무대 위를 가르는 동작은 기품과 절도있는 양반자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관직을 부여받은 관료들의 남성군무가 돋보였다. 전통복식을 차려입고 버선발을 들어 올려 발레테크닉을 선보이는 남성무용수들의 몸짓과 굳게 다문 입매에서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2막 2장의 ‘기생점고’에서 여성군무들은 풍속화 속 기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고 특히 변학도를 유혹하는 소고춤 기생, 부채춤 기생, 스카프춤 기생들은 한국춤에 등장하는 소품들을 이용하여 각자의 느낌을 살린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하나의 구경거리로 삽입하는 춤)을 선보였다. 이처럼 극 전반에는 국내 관객 뿐 아니라 해외관객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한국창작발레의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려주는 <발레 춘향>은 전막의 구성이나 군무, 독무의 테크닉적인 면에서 고전발레 레퍼토리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것들이 오랜 시간이 반복되어오며 많은 이들에게 발레의 정석으로 인정받게 되었듯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무르익고 숙련되어 한국발레레퍼토리로 정착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뉴스테이지=홍애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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