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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픽] 배송 중 변질된 신선식품 '묻지마 환불' 가능해질까?...소비자 보호 vs 블랙 컨슈머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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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픽] 배송 중 변질된 신선식품 '묻지마 환불' 가능해질까?...소비자 보호 vs 블랙 컨슈머 양산
이상헌 의원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대표발의...유통사가 과실 없음 입증해야
  • 황혜빈 기자 hye5210@csnews.co.kr
  • 승인 2021.12.24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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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에 사는 김 모(여)씨는 김장을 위해 온라인몰에서 산 배추가 모두 썩은 상태였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 씨는 지난 1일 신선식품 전문 온라인몰서 절임배추 20kg을 주문했다. 배송 받은 후 확인해보니 배추 대부분이 무르고 변색된 상태였다고. 온라인몰에 환불을 요청했으나 “3분의 1 이상 공기에 노출되면 붉게 변한다”며 김 씨 탓으로 돌렸다. 김 씨는 “누가 봐도 상한 배추인데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판매업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믿고 주문하라는 말인가”라며 억울해했다.
 

# 인천 남동구에 사는 전 모(여)씨도 지난 11월 초 온라인을 통해 구매한 제철 꽃게 2마리를 배송 받은 후 깜짝 놀랐다. 박스를 열어보니 꽃게 한 마리의 몸통이 까맣게 썩어 있었다고. 업체에 전화해 항의한 후 사진까지 보내줬으나 "유통과정에서 변질된 게 맞는지 CCTV 확인 후 연락주겠다"면서 감감무소식이었다. 전 씨는 "평소 자주 이용해왔던 업체라 믿고 구매한 건데 먹지 못할 상태로 배송됐다"며 "여행 갈 때 가져가려고 주문한 건데 아무런 답변도 없어 갑갑할 따름이다"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을 통해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온라인몰에서 판매된 농수축산물 누적 거래액은 총 5조9507억 원으로 전년 동기(4조5502억 원) 대비 30.8% 증가했다. 

덩달아 관련 불만도 늘고 있다. 식품이 상하기 쉬운 여름뿐 아니라 가을, 겨울에도 채소가 무른 상태로 배송됐다거나 변색된 채 배송됐다는 불만이 다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은 지난 10월 22일 상한 채로 배송된 신선식품에 대해 소비자가 청약철회를 요청할 경우 판매업체가 유통과정에서 상품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청약철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에 계류돼 있다.

현행법에선 신선식품의 변질을 ‘시간이 지나 다시 판매하기 곤란할 정도로 재화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 자체가 모호한데다 소비자들이 판매자의 책임을 증명해야 해 보상이나 환불을 받는 게 어려웠다. 사례에서처럼 판매자가 절임배추의 변색 책임을 소비자에게 돌리면 소비자가 판매자의 책임을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개정안은 반대로 판매자가 자신이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배송 상품의 품질 이상에 대한 과실이 소비자가 아니라 판매자에게 있다고 간주하는 게 골자다. 

이상헌 의원 측은 “법안을 발의한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처리가 되지 않았다”며 “내년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가 열리면 통과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 SSG닷컴, 마켓컬리, 오아시스마켓 등 신선식품 사업을 하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은 변질 원인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블랙컨슈머를 양산해낼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는데 유통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건 과도하다”며 “제조사, 유통사, 택배사를 거쳐 고객이 물건을 받게 되는데 유독 유통사만 무고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건 부당하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현재도 변질 상품 입고 시 입증 없이 보상해주는 업체가 있는데 업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블랙 컨슈머를 양산할 여지가 있다"며 "현재도 신선식품을 관리하는 사업자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곧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체 콜드체인 설비를 구축하거나 무상 반품 등의 제도를 운영하며 최상의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통업체 대부분이 유통과정에서 변질된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현재 자사는 문제가 있는 신선식품의 경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환불을 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런 프로세스를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가 많이 생기면 업체에서 환불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법안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는 보완할 사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변질된 식품을 구매했을 경우 대면으로 신뢰성을 입증할 수 있는데 온라인은 아무래도 비대면이다 보니 유통과정을 입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오프라인과는 차별화된 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플랫폼 입장에서는 도착한 시점에 신선식품이 변질된 상태였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입증 방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형 플랫폼들은 콜드체인 등 물류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영세업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변질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식품 포장 직전의 상태, 포장 상태, 도달까지의 기간 등 통상적인 기준을 둔 후 이를 토대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황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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