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I 활용으로 인한 편리함 뒤에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를 조정하고 피해를 양산하는 일도 현실이 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2026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AI가 몰고올 소비자 생태계 변화와 혼란을 진단하는 연중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신용카드 해지뿐 아니라 자산관리 서비스 해지, 마이데이터 탈퇴, 오픈뱅킹 해지, 간편결제 연결 해제 같은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끊고자 할 경우 서비스 제한, 혜택 상실 등을 안내하거나 계속 이용·수정 선택지를 더 눈에 띄게 배치하는 행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가 해지나 탈퇴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서비스 유지를 유도하는 선택지가 더 눈에 띄게 배치되거나 해지 직전 재확인 팝업이 반복되는 것은 취소·탈퇴 방해, 잘못된 계층구조 등의 다크패턴 유형이다.
금융사들은 해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서비스 제한 사항과 정보 삭제, 이용 불편 등을 고객이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절차라는 입장이다.
◆ "잠깐! 이대로 해지하면..." 은행, 카드 등 금융사 서비스 곳곳에 다크패턴 행위 여전
은행 앱에서는 마이데이터 탈퇴나 오픈뱅킹 해지 과정에서 정보 삭제와 복구 불가, 재가입 제한을 전면에 안내하는 화면이 확인됐다.

기존에 동의한 전송 요구가 모두 철회되고, 수집된 개인신용정보는 삭제되며 삭제된 정보는 재가입하더라도 복구되지 않는다는 문구도 제시됐다.
최종 확인 단계에서는 "마이데이터 탈퇴, 정말 탈퇴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이 노출됐고 '그만할래요'와 '계속 진행하기 버튼'이 함께 배치됐다. 탈퇴 전 소비자의 의사를 재확인하는 절차지만, 정보 삭제와 복구 불가 안내가 반복되면서 소비자가 탈퇴 결정을 재고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 측은 "마이데이터 서비스 탈퇴 시 관련 내용은 금융보안원의 마이데이터 기술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필수적으로 고지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계좌, 카드, 페이·포인트 등 등록 정보가 삭제되고, 오픈뱅킹 온·오프라인 서비스를 모두 가입한 고객이 한 채널에서 서비스를 해지하면 다른 채널에도 해지 내역이 자동 반영된다는 내용이다.
해지 직전 팝업에서도 "우리 오픈 뱅킹을 정말 해지하시겠어요?"라는 문구와 함께 "해지한 날에는 다시 가입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가 노출됐다. 해지에 따른 정보 삭제와 재가입 제한을 전면에 고지한 셈이다. 해지 버튼 자체는 명확하게 표시됐다.
우리은행 측은 "오픈 뱅킹은 금융결제원 연계 절차상 해지 당일 재가입이 제한돼 사전 안내가 필요한 것"이라며 "해당 안내와 재확인 절차는 해지를 제한하거나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부 금융 앱에서는 소비자가 해지를 선택한 이후에도 서비스 유지 선택지가 더 눈에 띄게 배치돼 있다.

팝업 하단에는 해지하기와 계속 보호받기 버튼이 함께 배치됐다. 계속 보호받기는 노란색 큰 버튼으로 표시됐으나 해지하기는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형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미 해지를 선택했음에도 금융 사기 보호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서비스 유지 선택을 다시 권유받는 구조다.
자산관리 설정 화면에서도 다른 자산 찾아보기 버튼은 노란색으로 크게 표시됐으나 자산관리서비스 해지는 하단에 텍스트 형태로 배치돼 있다.
카카오페이 측은 해당 팝업이 자산관리 서비스와 함께 해지되는 보안 서비스 '금융 지킴이'를 알리기 위한 안내라며 "해지하기 버튼 한 번으로 추가 절차 없이 처리되는 구조여서 다크패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드사 앱에서는 카드 해지 전 보유 혜택과 포인트, 자동납부 등을 안내하거나 해지 대신 일시정지 같은 대체 선택지를 제시하는 화면이 나타난다.

KB Pay를 운영하는 KB국민카드 측은 "카드 일시정지 안내는 분실·도난 시 신속한 사용 중단을 돕고 재발급 시 연회비 재부과 가능성도 함께 알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올해 다크패턴 관련 자율점검을 두 차례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해지 과정에서는 "남아 있는 카드 혜택을 계속 받으시겠어요?"라는 문구와 함께 카드 혜택 계속 받기와 카드 해지 선택지가 제시됐다.
현대카드 측은 "기업 입장에서 탈퇴를 권장하지 않는 만큼 두 선택지 중 한쪽으로 시선이 더 가게끔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반적이고 탈퇴 자체를 어렵게 만든 구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간편결제 연결 해제 과정에서도 해제보다 수정 선택지가 더 눈에 띄게 배치돼 있다.

소비자가 연결 해제를 선택하기보다 기존 연결 내용을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화면으로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지가 더 강조된 구조다.
토스 측은 "해당 화면은 이용자가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된 관리 화면"이라며 "연결 해제 기능도 동일 화면 내에서 명확히 제공돼 특정 선택을 어렵게 만들거나 제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버튼 색상, 음영 다른 것은 명백한 소비자 선택권 제한 행위..."금융사들 다크패턴 정의 너무 좁게 해석"
마이데이터 전송 요구 철회나 오픈 뱅킹 해지 등은 소비자 자산·개인신용정보·계약 조회 권한과 연결돼 있어 사전 고지가 필요하다.
문제는 안내 방식이다. 해지에 따른 불이익을 고지하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서비스 유지 선택지를 더 눈에 띄게 배치하거나 해지 직전 팝업을 반복적으로 띄우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
특히 계속 보호받기, 카드 혜택 계속 받기, 연결 내용 수정하기 등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지는 크게 강조하고, 해지하기, 연결 끊기 등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하는 방식은 잘못된 계층구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필요한 고지라고 하더라도 소비자가 이미 해지 의사를 표시한 뒤 계속 이용을 유도하는 버튼을 더 강조하거나 불안감을 자극하는 문구를 반복하면 실질적으로 이탈 방해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 단체에서는 금융사들이 다크패턴 정의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민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은 해지 방해 외에도 여러 유형을 포함하고 있어 버튼 색상이나 음영을 다르게 배치해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명백한 다크패턴 유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이 가입과 해지 단계에서 상반된 UI 설계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상품 가입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버튼을 두드러지게 표시하는 것이 소비자 편익이라고 내세우면서 해지 단계에서는 반대로 해지 버튼을 배경 색상과 동화되도록 배치하는 것은 금융사들이 주장하는 소비자 편익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남아 있는 혜택을 계속 받으시겠어요' 같은 감정적 문구로 소비자를 붙잡으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해지 의사가 분명하다면 이런 표현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지선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대면 설명이 온라인 설명으로 대체되는 비대면 금융환경에서 다크패턴과 같은 새로운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보호방안을 지속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태영 기자]
